2022/04 6

일을 마치고

일을 마치고 수십 수백 번에 걸친 교정, 보완을 마쳐 출판사에 발송하고 이틀째다. 출판사에서 편집본 원고가 오는대로 재검토 후 보내면, 바로 표지를 선정해야하고 인쇄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벅찬 과정이었다. 초고쓸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초고는 마음가는대로 무작정 써내려갔다면 퇴고는 그야말로 각고였다. 함부로 각고刻苦를 말하는 게 아니지만 참으로 피흘리는 작업이었다. 84년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91년에 장편소설 [마흔넷의 반란] 3권을 마칠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200자 원고지 5,000매 정도를 거의 한달음에 썼다. 쓰는 즉시 출판사에 넘긴 게 지금 생각하면 큰 실수였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면서 그 어떤 전달사항도 나에게 전해진 것 없이 원고 상태 그대로 책이 되어 세상에..

카테고리 없음 2022.04.27

퇴고(推敲)

퇴고推敲 옛날에 어느 선비가 말을 타고 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퇴고 했다고 하던가. 말을 타고 가면서 어떻게 글을 볼 수가 있담. 몸이 흔들리는데, 그리고 말을 타고 다니던 옛날이라면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연필로 쓴 글이 아니고 먹을 갈아 한지에 썼을 것 아닌가. 그 무엇으로 어떻게 썼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퇴고다. 이 이야기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퇴고를 하는 그 사람의 글에 대한 열의, 퇴고의 중요성, 어려움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에 돌아온지 100일이다. 나는 그 100일 동안 몇 차례 병원 간 것, 조계사에 초파일 연등달으러 간 것, 섬에 머물때 영양제랑 탈모 방지 비누를 보내준 동료 작가와 인사동에 간 것, 엊그제 시인 친구 만나러 왕복 5시간에 걸쳐서 먼 데 다녀온 것, 손..

카테고리 없음 2022.04.17

오늘은

오늘은 나는 매일같이 오늘은, 오늘은, 하고 기다렸다. 노도섬에서 품고온 남해 이야기가 완성되기를. 어젯밤에는 완성이더니 아침에 보면 또다시 오탈자에 오류가 보인다. 장 장 A4 300매 정도의 분량을 압축하면서 뺄것을 안 빼고, 넣을 것을 안 넣는 일이 발생한다. 수정하고 바로 저장을 눌렀는데 그게 삭제나 되돌리기 표를 잘못 눌러 원상태로 돌아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가 마른다. 머리꼭지에 뜨끈뜨끈 열불이 치솟는다. 종아리에도 열불이 옮았다. 15시에 아침 겸 점심 한술 먹고 어느덧 한밤이 되었다. 위장도 고단한가. 텅 비어 신호를 보낼만 한데도 하도 열중하니까 그 시퍼런 서슬에 밥주라고 신호를 보낼 수가 없는가. 전혀 기미가 오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두릅, 당귀, 냉이, 엄나무..

카테고리 없음 2022.04.14

꽃들의 아우성

꽃들의 아우성 드르륵 거리는 소리. 대형 망치로 부수고 끌같은 것으로 긁어내는 소리, 듣고 있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려오는 그 소리가 사흘 째다. 처음엔 일에 코가 빠져서 잘 모르고 지냈다. 오늘은 특별히 더 요란하고 거슬렸다. 그 소음의 출처를 알아보러 집밖으로 나갔다. 경비 아저씨가 젊은 남자들과 저만치 서서 나에게 손짓했다. 아마도 나처럼 소음을 견디다못해 밖으로 나온 아파트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경비 아저씨가 팔을 뻗어 우리집 바로 옆동을 가리켰다. 아파트 마당에 추럭이 서 있고 그 추럭에 깨진 벽돌, 뜯긴 타일, 합판같은 것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집수리하는 집에서 나온 폐기물이었다. 쉽게 끝날 소음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닫고 밖에 나갈 준비를 ..

카테고리 없음 2022.04.06

먼데서 전화가

먼데서 전화가 오늘은 새벽부터 기분이 저조했다. 원고 작업을 마무리하고 손을 농아서인가. 갑자기 시간이 강물처럼 밀려와 주체하기어려웠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으면 잠시 조계사에 가서 향 피워 올리고 탑이라도 돌고 올까 싶었다. 법당에는 일일이 체온 재고 뭐를 쓰고 귀찮다. 밖으로 마음을 돌리면 덜 우울할 것 같았다. 마침 먼 시골에 사는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 자식 다 소용없어요! 전화를 귀에 대자마자 그분이 말했다. 음성이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 그분의 한 아들은 외국 나가 살고 있고 한 아들은 서울에 산다. 자식이 소용없다 소리를 그분은 근래 자주 하셨다. 오늘도 똑같이 그 말씀이었다. 자존심이 워낙 강한 분이라 여간해서는 자식이야기, 더구나 조금이라도 언..

카테고리 없음 2022.04.05

청주에 가고 싶어

청주에 가고 싶어 나는 어제 하루를 완전히 공쳤다. 심화心火가 내 영혼까지 잠식해서 한 자리에 좌정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잘 인내해왔고, 얼마나 무던하게 내가 쓴 소설을 위해 헌신했으며, 비티민D 를 위해서 잠시잠깐 햇살 바라기하러 밖에 나가는 시간도 아까워라 몰두했는지, 그게 다 허망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지? 내가 어디에 설 자리가 있어? 날보고 어디로 가라는 거야? 오전 내내 나는 집안을 뱅뱅돌면서 고민했다. 周易괘는 수뢰둔이었다. 더 해석할 여지 없이 상당히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자 외출도 어려울 듯 싶었다.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었다. 그게 반드시 수뢰둔의 일진이어서가 아니라 내 심신이 몹시 지쳐있기 때문이었다. 내 작업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나는 악조건?을 묵..

카테고리 없음 2022.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