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오늘은

능엄주 2022. 4. 14. 23:10

오늘은

 

나는 매일같이 오늘은,  오늘은,  하고 기다렸다. 노도섬에서 품고온 남해 이야기가 완성되기를. 어젯밤에는 완성이더니 아침에 보면 또다시 오탈자에 오류가 보인다. 장 장 A4 300매 정도의 분량을 압축하면서 뺄것을 안 빼고, 넣을 것을 안 넣는 일이 발생한다. 수정하고 바로 저장을 눌렀는데 그게 삭제나 되돌리기 표를 잘못 눌러 원상태로 돌아갔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 연달아 발생했다.

피가 마른다. 머리꼭지에 뜨끈뜨끈 열불이 치솟는다. 종아리에도 열불이 옮았다. 15시에 아침 겸 점심 한술 먹고 어느덧 한밤이 되었다. 위장도 고단한가. 텅 비어 신호를 보낼만 한데도 하도 열중하니까 그 시퍼런 서슬에 밥주라고 신호를 보낼 수가 없는가. 전혀 기미가 오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두릅, 당귀, 냉이, 엄나무순, 방풍나물 등, 봄나무새가 썪고 있다. 베란다 상자엔 감자가 저도 봄이 왔다고 독한 싹을 티운다. 고로쇠물 언제 넣어놨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낳고 푸수수할 때 나의 큰 오라버니가 전국주부백일장 접수증을 가지고 진천에서부터 올라오셨다. 나는 도저히 외출을 할 수없는 산모였다. 여름철인데도 으시시 떨며 경복궁에서 열리는 전국주부백일장에 할 수없이 가게 되었다. 시간은 널널한데 도저히 눈이 시금거리고 몸이 떨려서 더 이상 경복궁 잔디밭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후딱 원고지 0장을 채우고는 곧바로 제출했다.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연못가에서 한 주부를 만나는 바람에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어 매점에가서 빵을 사먹었다.

뜻밖에도 전국각처에서 몰려온 300명이 넘는 중에서 나는 산문부 일등이었다. 그때 시에서 일등했던 친구가 언제부터 오라하는데 못 가고 있다. 우리는 그후 방송국에 초청받았고, 당시 전국주부백일장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영부인 초청으로 청와대에도 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박화성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써낸 작품에 대해서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직업을 바꾸라' 하셨다.  무릇 가정주부도 직업의 범주에 드는가. 나는 그 직업도 아닌 가정주부를 근래 간신이 사퇴했다.

 

그 시인이 사는 곳은 마스크 안 써도 되는 공기좋고 물좋은 곳이다. 일부러 꽃구경도 가는데 친구가 먼데서 부르는데 나는 옴싹도 못하고 뭉개고 있다. 나는 주야장창 글쓰고 있는 내가 수시로 가엽다. 생활비를 벌어야 '家' 자를 붙일 수 있다는 Y 교수 말이 생각난다. 실제로는 J작가의 말처럼 작가가 아니라 著者이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깊다.

 

 20대 초 서울대학병원 암병동 아버지 침대 옆에서 쓴 내 원고를  우리어머니가 계집애가 맨날 책만 붙들고 앉아 있다고, 불살러 버렸다.  사실은 그 원고가 진짜다. 나의 최초 작품이었다. 선생님 경력도 있고, 음식 잘하시고 바느질 뜨게질 선수다. 언변도 변호사 저리가라이고, 문장도 기가막힌다.  남들이 내 어머니를 그렇게 평했다. 글씨체도 담임 선생님들이 깜짝 놀랄 정도인데 둘쨋딸 보기를 아버지가 딴데 가서 낳아가지고 온 애처럼 홀대했다. 계모 같은 어머니였다.

 

호적상의 엄연한 생모, 내 친모가 그렇게 대하니 나는 10대 부터 마음으로부터 이미 집을 떠나 혼자 고독에 빠졌다. 쉬는 시간에는 혼자 풀밭에 나와서 먼 산만 바라보았다. 반대로 집밖에 나가면 대접을 잘 받았다. 친구 부모님도, 평생 학교 선생님이던 나의 막내 이모도 ' 너가  내딸이면 좋겠다' 하는데 우리어머니는 오로지 큰딸밖에 모른다. 그러니 어찌 글을 안쓰고 견딜 수가 있을까. 글쓰면서 나를 내가 위로했다. 학교가 파해도 집 대신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집에서 일하는 언니가 나를 지 종처럼 부려서 집에 가기가 무서웠다. 

 

오늘은, 오늘은, 일이 끝나면 시인의 집으로 그냥 달려갈 작정이었다. 그게 꽃이 피기 전 이야기다. 지금 우리집 앞에 목련나무는 꽃잎이 거의 다 떨어져 버렸다.  곧 라일락꽃이 곧 피어날 조짐이다. 시간이 속도를 낸듯 내곁을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오늘 밤 겨우 원고를 마무리지었다. 이 원고 무지하게 고생해서 쓴 것이었다.  모기 벌레 수백 마리가 모기향 피우고 에프킬라를 연속 살포해도 복병처럼 나타나 내 얼굴과 손, 발등, 종아리, 노출된  피부를 다 뜯어먹었다. 아침에 보면 모기와 벌레 무리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찌는 더위가 한창인 섬에서의 한 달은 거의 일을 못하고 잠도 설쳤다.  

물린 자국은 발갛게 부풀었다가 검은 점으로 남아 있어 이전의 내 모습은 사진속에나 남아있다.  물린 부위가 여태도 발갛고 징글징글 가렵다.

수질 나빠서 머리칼 왕창 빠져서 징징 울었다. 게다가 배가 엉뜽한데다 정박해서 절벽을 기어오르다 엎어져 다친  다리와 팔,  섬에서도, 집에 와서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원고 때문이었다. 어떤 소설작품보다 품이 많이 들었고, 역사적 사실 일일이 확인 고증하느라고 이마에 주름이 대폭 늘어났다. 어려웠다. 높으신 분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앞으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오늘은 정말이지 집을 떠나 먼 데로 헤매다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 내일이 다가오고 있지 얺은가. 나는 내 생애의 빚, 마음의 빚을 갚지 못하고 이 상태로 내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 그게 제일 우려된다.  천당 지옥을 떠나서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내일은 정형외과를 가보나? 다리에서 열나는 것 처음 겪는다. 계속 지지 뭉개고 앉아 지내니 다리가 시위하는가. 나의 완고한 미련스러움을 격파하자는 것인가.  어느덧 밤 12시가 가깝다. 이 댁의 따님은 왜 아직도 귀가를 하지 않는가. 그 무엇도. 내가 쓰는 소설 이외는 신경쓸 여력이 없다. 내일은 움직이자. 움직이는데 소망이 따른다. '내일' 에다 기대를 걸어본다. 밤이 이미 깊었다 이만 주무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