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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 가고 싶어

능엄주 2022. 4. 2. 18:47

청주에 가고 싶어

 

나는 어제 하루를 완전히 공쳤다. 심화心火가 내 영혼까지 잠식해서 한 자리에 좌정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잘 인내해왔고, 얼마나 무던하게 내가 쓴 소설을 위해 헌신했으며, 비티민D 를 위해서 잠시잠깐 햇살 바라기하러 밖에 나가는 시간도 아까워라 몰두했는지, 그게 다 허망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지? 내가 어디에 설 자리가 있어? 날보고 어디로 가라는 거야? 오전 내내 나는 집안을 뱅뱅돌면서 고민했다.  

 

周易괘는 수뢰둔이었다. 더 해석할 여지 없이 상당히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자 외출도 어려울 듯 싶었다.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었다. 그게 반드시 수뢰둔의 일진이어서가 아니라 내 심신이 몹시 지쳐있기 때문이었다. 내 작업에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나는 악조건?을 묵살하고 캐톨릭 기관에서 운영하는 식품점에서 지난 가을 구입, 별로 먹지도 않고 둔 김장김치를 혹시 몰라 큰 한포기 봉지에 담고 잘 포장했다. 우리집에서 현재 외부로 나갈 만한 것이라곤 폭 익어 유산균이 잘 어우러졌을 김장김치 한 포기가 다였다. 언젠가 한 번 먹어보니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는 절임 배추, 또는 유명한 요리가, 명장 김치라는 것, 모든 종류 중에 그나마 이번 김치 주문은 70% 성공한 것 같았다.

 

나는 집밖으로 나갔다. 전혀 예상에도 없고 나갈 만큼 내 상태가 양호한 것도 아닌 채 나는 안국역에서 내려 곧바로 버스를 갈아탔다. 서울이 좋다. 나는 언제나 서울에 살게 될까. 미세먼지 심하고 코로나19 기승부려 시골로 가고 싶은 마음 반, 서울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 반반이었다.  대학로는 무섭게? 변화 발전하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이 여러 개 보여 여기가 어디지? 하고 묻고 싶었다.  문화예술위원회 그 건물 전면에 피어난 백목련이 아름다웠다. 마로니에 공원이 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김상옥 동상은 너무나 훌륭해보였다.  남해 유배문학관 앞 마당, 휑덩그렁한 벌판 같은 곳에 쓸쓸히 자리하고 있는, 서포 선생의 동상(坐像)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상조차도 먼지날리고 비바람 맞고, 주변에 나무그늘도 없고, 꽃도 없는 허허로운 장소에 홀로~   

 

버스에서 생각에 잠긴 사이 나는  목적지에 이르렀다.  珉이는 차를 청소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차를 긁어 상채기를 남겼고 차문에 껌딱지를 붙여놓았다면서 한참을 닦았다. 왜 갑자기 차를 닦을 생각을 했니? 내가 물었다.  이모 나 청주 가고 싶어요. 청주는 니네 엄마가 가고 싶어했잖아. 니네 엄마랑 나랑 그때가 언제니? 청주 갔었잖아. 우리 형제들이 다닌 교대부속초등학교에 제일 먼저 가보았어. 우리가 살던 서운동 집은 그 근처가 하도 변해 찾을 수가 없더라. 중앙공원에도 갔고, 우리 어릴 때 자주 아버지 등에 엎혀 갔던 남궁외과가 지금도 중앙공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반갑더라. 전교생의 소풍코스였던 명암방죽은 옛날 모습이 전혀 안나. 약수도 끔찍한 녹물이 돼 있어. 무심천 둑길을 걸어 우리 외할아버지가 계셨던 용화사도 가보고, 육거리 시장에 가서 해장국도 사 먹었어. 옛날 모습 거의 지워지고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가고 싶기는 하다. 이처럼 내 심정이 회오리를 만날때 더욱 그리운 곳이 고향 아니겠니?

 

나는 약속 날자를 잡을 수가 없어 그렇게만 이야기하고 김치 한포기를 珉이에게 주어놓고 되돌아왔다. 내 마음이 해저물 때의 차거운 바람결에 마구 흔들렸다. 이미 지하철은 만원이었고 집으로 가기가 바빴다. 어느 곳이 됐든 머물수 없는 마음이었다. 하루 이틀 마음을 추스리고 그래! 청주로 가자. 도망치듯 쫓겨온 고향이지만 내가 낳고 자란 고향이므로 청주에 가고싶어. 다음 주로 약속을 잡을까. 그때쯤이면 무심천변에 벚꽃이 만발할까. 올봄은 꽃소식이 뜸하고 많이 더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