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퇴고(推敲)

능엄주 2022. 4. 17. 23:00

퇴고推敲

 

옛날에 어느 선비가 말을 타고 가면서 자신이 쓴 글을 퇴고 했다고 하던가. 말을 타고 가면서 어떻게 글을 볼 수가 있담. 몸이 흔들리는데, 그리고 말을 타고 다니던 옛날이라면 책상에 앉아서 편하게 연필로 쓴 글이 아니고 먹을 갈아 한지에 썼을 것 아닌가. 그 무엇으로 어떻게 썼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퇴고다. 이 이야기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퇴고를 하는 그 사람의 글에 대한 열의, 퇴고의 중요성, 어려움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에 돌아온지 100일이다. 나는 그 100일 동안 몇 차례 병원 간 것, 조계사에 초파일 연등달으러 간 것,  섬에 머물때 영양제랑 탈모 방지 비누를 보내준 동료 작가와 인사동에 간 것,  엊그제 시인 친구 만나러 왕복 5시간에 걸쳐서 먼 데 다녀온 것,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나는 무슨 일이건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고 마는 성미여서 몸이 매우 고달프다. 책을 읽다가 일이 생겨 일어났다하면 그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좀전 까지 읽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때문에 시간 아까워서 밥은 고사하고 물도 안 마시고 세수조차  안한다. 전화오는 것도, 옆에서 말을 시켜도 듣지못한다.

 

잘 읽어지는 300쪽 정도의 장편 소설의 경우 독후감을 써야 하므로  3시간에서 4시간 가량 소요된다. 안 읽어지는 책은 읽지 않는다. 책이 사람을 이끌어야지 사람이 억지로 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일단 잘썼건 못 썼건 책은 재미가 첫째다. 유식하게 쓴 시도 소설의 분량에 미치지 못하지만 시도 안 읽어지는 것은  그냥 지나친다.   타인의 글을 읽는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삼아 읽는다 

 

퇴고는 새로 쓰기보다 더 어렵고 힘든다. 마치 헌집을 리모델링 하기보다 새로 짓는 게 낫다고 할만큼 비용은 비용대로들고 여러가지로 복잡하다고 한다. 내가 부족해서인가. 나는 귀가 100여일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제대로 놀지도 못했다. 퇴고가 나를 옭아맸다. 손으로 쓰기보다 워드가 쉽다고 하지만 컴퓨터 스트레스 만만치 않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이 미숙해서겠지만 쓰잘데 없는 광고가 연신 밀고 들어와 지면을 방해하고, 성질 급해 오타가 많다. 글자를 고치고 여러 번 저장을 해도 나중 보면 저장이 안 돼 있다. 실수가 자주 일어닌다.

 

퇴고의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나는 만큼 문장은 처음보다 훨씬 수승하고 정리가 된다. 좋은 글이 탄생된다. 이번에는  몹시 고달프다. 이미 몸이 아파져서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편히 쉰다고 수이 물러갈 증세가 아니다. 오늘은 눈 뜰때 부터 얼굴이 구겨졌다. 열일 제치고 내일은, 그렇다 내일은, 그렇게 미루고 미루면서 오늘로서 드디어 수 십 차례의 마지막 퇴고를 마쳤다. 매일 장편소설 한 권씩을 읽은 셈이 된다. 두 눈을 부릅뜨고 고치고 보완했다, 세심하고 면밀하게 보고 또 본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이에 대해 어떤 기별이 올지 기다려진다.

 

편집본을 받아야 추천서를 의뢰하든지  비평을 받든지 할텐데 마음이 완전 놓이는 건 아니다. 이제 더는 보기가 싫다.  이 선에서 내 수고를 끝내야 할 것 같다. 그게 내 역량이고 한계가 아닐까.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교정지가 나오면 그때 다시 보기로 하고 오늘은 종료하고 싶다. 

 

장편소설을 연작으로  3권 쓰고 하늘로 떠난  동료가 생각난다. 학교 교사로서 예쁘고 갸날픈 소녀같은 여자였다. 체력이 감당이 안되었을 것 같다. 교사와 작가를 겸했으니 그 피곤의 강도를 알만 하다.

퇴고推敲의 어려움, 그만 책상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나는 노력했다. 내 깜량껏 성의를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