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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능엄주 2022. 4. 27. 21:42

일을 마치고

 

수십 수백 번에 걸친 교정, 보완을 마쳐 출판사에 발송하고 이틀째다. 출판사에서 편집본 원고가 오는대로 재검토 후 보내면, 바로 표지를 선정해야하고 인쇄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벅찬 과정이었다. 초고쓸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초고는 마음가는대로 무작정 써내려갔다면 퇴고는 그야말로 각고였다. 함부로 각고刻苦를 말하는 게 아니지만 참으로 피흘리는 작업이었다. 84년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91년에  장편소설 [마흔넷의 반란] 3권을 마칠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200자 원고지 5,000매 정도를 거의 한달음에 썼다. 쓰는 즉시 출판사에 넘긴 게 지금 생각하면 큰 실수였다. 출판사에서 편집하면서 그 어떤 전달사항도 나에게 전해진 것 없이 원고 상태 그대로 책이 되어 세상에 출현했다. 퇴고 과정없이 책을 내다니. 저자인 나는 물정을 모르니 그렇다쳐도 출판사도 맹하기는, 아니 급하기는 나보다 앞섰다.  

 

2014년에 다시 수정 보완하여 수정판을 재출간했다. 만약에 그냥 두었더라면 나는 내 생애 최초의 작품이니 더욱 창피하고 부끄러웠을 것 같다. 사람도 태어난 조건, 환경, 이를테면 가문, 족보가 중요하듯 서책도 그 출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번에는 내가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을 소재로 했기때문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내 정성과 수고를 깡끄리 쏟아부었다. 이미 품절상태인 고가?의 수다한 참고자료를 구해서 통독했고 가능하면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름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경상도 먼 섬 100일, 그리고  아름다운 꽃우물 우리 동네에 이르러 또 100여 일 동안, 거의 두문불출 작업에 내 모든 기량을 일심으로 쏟아부었다. 지난한 그 과정에서 나는 인생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듯 매몰되어 코를 못들고 지내는가. 나 또한 보통의 사람이므로 때때로 깊은 회의에 잠기기도 했다. 인생의 평범한 행복을 도외시한 채, 내 모든 능력과 시간을 다 바치고,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현세의 사람이 아닌듯 세속을 멀리하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매일처럼 반복했다.  

 

마침내 그일을 종료하고 나서 나는 방황하듯 거리로 나갔다. 珉이와 함께  어제는 밖에서 맛난 것 사먹고, 오늘은 집에서 종일 잠을 잤다. 마음으로는 멀리 떠나보고 싶었지만 몸이 버거워했다.

내일은 일산의 명당이라는 정발산 역 근처 고급 빌라에서 시집 출판기념회 초대가 있다. 오래 모임을 못했고, 사람도 안 만났으니 참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에게 생소하다.  나는 그저 혼자가 편하다. 그러나 가게 될 것이다. 본시 정발산은 내가 동경하고 살고싶어하는  동네이기 때문이고, 코로나19로 오랜만에 하는 이번 출판기념회는 나에게 조금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서다.

열중하던 일에서 손을 놓으니 쉽게 마음을 잡을 수가 없는가. 몸도 마음도 영일寧日을 누리기에는 시기상조인가. 일을 마치고 나는 다시 상념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