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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아우성

능엄주 2022. 4. 6. 16:28

꽃들의 아우성

 

드르륵 거리는 소리. 대형 망치로 부수고 끌같은 것으로 긁어내는 소리,  듣고 있기에는 너무 큰 소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려오는 그 소리가 사흘 째다. 처음엔 일에 코가 빠져서 잘 모르고 지냈다. 오늘은 특별히 더 요란하고 거슬렸다. 그 소음의 출처를 알아보러 집밖으로 나갔다. 경비 아저씨가 젊은 남자들과 저만치 서서 나에게 손짓했다. 아마도 나처럼 소음을 견디다못해 밖으로 나온 아파트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경비 아저씨가 팔을 뻗어 우리집 바로 옆동을 가리켰다. 아파트 마당에 추럭이 서 있고 그 추럭에 깨진 벽돌, 뜯긴 타일, 합판같은 것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집수리하는 집에서 나온 폐기물이었다. 쉽게 끝날 소음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닫고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도저히 그 엄청난 소음을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집앞, 학교 건물에서는 전혀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목련꽃이 만개한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학생들이 보였으나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는 사라진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교문을 오래 닫아놓게 되니 종치는 인력을 줄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3년여 동안 폐교하다싶이 학교를 비워두니 굳이 종치는 업무가 불필요 한 것일지도. 나는 모처럼 학생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발견하자 안도하며 단지를 걸었다.

 

와아! 꽃이 활짝!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봄을 전해준 산수유는 최적의 시기를  지나 있고, 곳곳에 개나리 목련 벚꽃이 볼만했다. 그늘에서 아직 꽃 피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목련나무는 꽃봉오리가 맺혀 병아리 주둥이처럼 귀여웠다. 진즉에 나올 것을, 나오길 잘했어!  봄꽃들이 마스크를 쓴 인간들을 향해 기뻐 소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잔디밭에 제비꽃도 보이고 냉이 민들레 씀바귀 지칭게 국수댕이 꽃다지의 푸른 빛이 나를 반겼다. 며칠 사이 세상은 봄 생명들의 꽃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노점상엔 쑥이며 시금치 야생미나리 취나물이 풍성하고, 로데오 거리의 둥근 의자는 거의 만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한 바퀴 휘돌았다. 야채가게도 기웃거리고 무엇을 살까 했지만 음식 만들기는 매번 성가시고 내게 버거웠다.

 

현란한 조명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꽃들이 제각기 제 고유의 함성을 질러대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얼마나 고맙고 미더운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쪽 저쪽 고개를 돌리면서 아우성치는 봄꽃의 노래, 봄의 찬미에 귀 기울였다. 4월을 어이하여 잔인한 계절이라 했던가. 4.19 때문만은 아니겠지. 나는 4.19에 대해 당시 을지로에서 내가 보고 느낀대로 소설 한 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봄꽃의 즐거운 함성에 화답하듯 새로운 의욕이었다.

 

저녁에 호구산 용문사에 대해 논문을 쓴 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남녘은 지금 꽃비가 한창이라며 갑자기 한 책을 일러주며 보라 했다. 나는 얼른 그 책을 책상으로 안고왔다. 상하권 두권 모두 합치면 1,400 페이지가 넘는 매우 중량이 나가는 책이었다. 두꺼운 책장이 얼른 펴지지 않았지만 나는 용케 찾아 읽을 수가 있었다. 서포 선생의 평론집, 산문집이랄 수 있는 그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인간의 욕망 - 인간의 욕망에 관한 담론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인간은 왕도의 공적을 이룰 수있는 영웅이지만 수명이 짧은 것과, 아예 큰 공적을 이룰 수는 없어도 수명이 긴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바라는가. 다시 말해 명예의 욕구와 생명의 욕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가. 채유후는 생명의 욕구가 더 중요하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평어評語를 더해 색욕色慾이 더 중요하다고 평결했다.' 며 채유후의 이론을 인용했다.

 

남녀간의 사랑 -  '백거이는 늙고 병들어 거의 죽음에 이른 나이에도 번소樊素에 대한 정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원진元眞(中唐의 시인)은 혈기가 안정되지 않은 젊은 시기에도 자신의 소설에서 장생張生이 최앵앵에 대한 애정을 끊어 버린 일을 변론했다. 이 사실을 두고 어찌 원진이 백거이 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원진이 장생을 내세워 자신을 변호했다고 보았다. 평자는 사랑하던 여자를 버린 사람이 후에 군주君主도 버리는 변절을 했다고 통박痛駁하고 있다.

 

욕망의 이론 - 욕망의 문제를 거론했다. '선가에서 말하는 오욕은 현실공간에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절제하지 않으면 몸을 잃고 이치를 멸하게 한다.~'  '욕망의 절제'에 대해서 최우상의 말을 인용했다.

 

위 글을 읽으면서 서포의 조카가  숙부에 대해 쓴 글이 갑자기 떠올랐다. 전화하신 그분은 나에게 서포의 이와 같은 면모도 참작하라는 의도같았다. 매우 고마웠다. 4.19 이야기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간 서포를 더 면밀히 연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녀 관계나 주유周遊에 대해 소탈한, 신선같은 서포의 인간의 욕망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평론은 나에게 조금 의아했고 흥미로웠다. 혹 이것은 죽음보다 더 혹독한 유배생활에서 서포 선생이 가장 통렬하게 체감했던 문제였을까.

꽃들이 즐거이 아우성치는 봄날의 단상치고는 어렵고 복잡한 논리였으므로 나에게 더욱 무거운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