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을 나서야 하는 이유 유몽인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64세(1622) 때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옆 삼장암(三藏菴)의 승려 법견(法堅)이 젊은 제자 자중(慈仲)을 보내 글을 청했는데, 위는 그때 써준 글의 첫 부분이다. 법견은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승장(義僧將)으로 활약하였다. 유몽인은 얽매임을 싫어하여 약관(弱冠) 때부터 산수 유람을 나섰다. 삼각산·천마산·설악산·금강산 일대를 보았고, 마천령을 지나고 장백산을 넘어 두만강에 이르렀으며, 칠보산·묘향산·구월산까지 우리나라 온 산하를 두루 유람하였다. 중국도 세 번이나 다녀와 요동에서 북경까지 그 아름다운 경관을 다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사마천(司馬遷)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