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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 왔다

집에 돌아 왔다 영하 10도를 웃돌아 겨울 추위가 실감나는 날, 나는 집에 돌아왔다. 무려 4개월 만이었다. 여름 끝무렵에 떠나 해가 바뀐 한 겨울에 돌아왔다. 내가 그처럼 내복을 좀 보내주라. 코트 그것도 좀 보내주라 해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던 내 코트는 베란다 옷걸이에 있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금방 찾아지는데, 겨우내 내복을 입지 않는 젊은 딸은 무심했다. 나는 내복도 겨울 코트도 없이 그 거친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은 것이었다. 남쪽이라 여기 처럼 자주 기온이 영하 10도 내외로 떨어지는 것은 드물어도 바닷바람 그것도 참아내기 여간 어려웠다. 밖에 안 나가면 그만이지만 어찌 24시간 방안에만 갇혀 지낼 수가 있단 말인가. 새벽에 나는 누운 채로 딸의 출근 인사를 들었다. 그애 얼굴을 볼 시..

카테고리 없음 2022.01.11

바다가 으르렁

바다가 으르렁 바닷물도 잠을 자는가. 으르렁! 으르렁! 짐승이 내는 듯한 소리 멈추니 집 바깥이 모처럼 조용하다. 아니 앵강만 바다 위에 넘실거리는 바람도 잠을 자는가. 그래도 또 모르는 일, 우리가 이곳을 빠져 나갈 때까지는 제발 바람이여 멈추어라! 새벽에는 잠잠하다가 갑자기 돌풍이 불어오는 일도 이곳에서는 자주 보는 일이다. 사람을 날려버릴 듯 무자비하게 몰아치는 바닷바람, 변덕스럽고 고약한 바람이다. 무섭다. 소름돋는다. 사람도 그 변덕을 닮는가. 그 고약한 바람의 성질머리를 사람이 배우는가. 더구나 우리가 머물고 있는 3동의 레시던스는 바다 위 바람이 모이는 곳에 바람막이처럼 지어져있다. 집 근처 동백나무도 그와 같은 자리에 있어 거센 바람에 잎새가 쪼글쪼글 말려올라가고 잎새 중앙 부분이 허옇게 ..

카테고리 없음 2022.01.10

노도 섬의 마지막 밤

노도 섬의 마지막 밤 '마지막' 이란 글자가 들어간 글은 어딘가 애끓는 마음 같은 것? 혹은 낭만적인 뜻? 또는 아쉽고 설레는 마음, 미련이 남아 차마 붙잡을 수는 없어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응축되어 있을 것만 같다. 노도 섬에 내가 머문지 석달하고 보름, 어언 백일이 훌쩍 넘었다. 작년 9월 말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입추, 말복, 처서 절기가 다 지나갔어도 노도 섬은 찌는 여름이었다. 후덥지근하고 푹푹 삶았다고 해야 옳을까? 습도가 엄청 높고 온몸이 땀으로 질퍽거리게 무더웠다. 출입구 현관문을 아예 열어제치고, 동북방의 창문 2개와 바다쪽을 향한 창문, 그리고 그 반대의 주방쪽 창문과 베란다 큰 문까지 활짝 열어도 앵강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한 바람이 아니었다. 짭짤하고 텁텁한..

카테고리 없음 2022.01.09

아들의 전화

아들의 전화 끝없는 고요가 흐르는 아침이었다. 바람이 거세지 않은 날. 내 집 앞 앵강만 바다는 평화롭고 잠잠하다. 바다가 흐느껴 울지 않는 날은 흰 갈매기 떼가 여유만만하게 바다 위를 날고, 뒷산의 동백나무 숲도 묵묵하고 의연하다. 노도 섬 일대가 고요속에 갈앉는 날이다. "모친께서는 잘 계시는가?" 아들의 목소리는 푹 잠겨 있었다. 잠긴 목소리와는 다르게 이몽룡이 성춘향이에게 안부를 묻듯, 아들의 말은 늘 그만큼의 유머를 달고 있었다. 오미크론까지 출현하여 전국이 뒤숭숭한 때에 두 녀석 건사하느라고 지쳐있는가. 에너지 충만한 애들이 코로나19 이후 학교에 거의 가지 못했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길어질 수록 가족들, 특히 그애들 아빠의 노고가 심해진다. 녀석들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그..

카테고리 없음 2022.01.09

그리움의 언덕까지

그리움의 언덕까지 밤잠을 비교적 잘잤다. 꿈도 없고 중간에 깨어나지도 않았다. 그만큼 나는 지쳐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많이 고달펐다. 노도 섬에서의 생활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날, 서너달 동안 벌여놓은 좌판을 거두는 일이었다. 자질구레한 물건부터 무엇이 왜 그리 필요한 게 많았던지 짐 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우체국 소포상자 5호에서 4호, 2호 박스 7개나 싸느라고 이미 아파있는 손가락부터 손목, 팔, 목, 등허리, 어깨, 무릎 어느 한 군데 비명지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음에 또 어느 집필실을 가게 되더라도 섬생활은 짐이 많아서 나에게 힘들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침밥은 전혀 맛이 없다. 세상에 이렇게 맛없기는 또 무슨 일인가. 그러나 오늘의 계획을 성취시키려면 밥은 필수다. 나는 억지..

카테고리 없음 2022.01.08

읍내 가는 날

읍내 가는 날 읍내 가는날은 섬에서 해방되는 그 몇 시간이 즐거웠다. 오늘은 전날의 문학기행과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즐거움은 이미 휘발하고 엄숙한 마음이었다. 먼젓 번 옆방 1호실과 읍내 나갔을 때, 나는 우체국 택배 용지를 몇 장 가져다 놓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복잡한 우체국 안에서 주소를 여러 장 쓰다보면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주소를 미리 써서 택배보낼 짐마다 붙여놓으니 한결 수월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나오는 과정에서 바닷물이 튀어 그 기록들이 흠씬 젖어버렸다. 나는 휴지로 물기를 닦았지만 우체국 직원이 다시 쓰라고 했다. 나는 황급히 다시 써서 붙이느라 허둥거렸다. 우체국에서 물건 하나하나를 대형 저울에 달아 값을 매기는 동안 관리소장님과 서포문학관 직원은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카테고리 없음 2022.01.08

노도 일기 36 짐을 싸다

노도 일기 36 짐을 싸다 오늘은 아침 부터 짐을 쌌다. 어제 그제 한두 개 싸놓았지만 오늘은 마지막으로 정리 차원이었다. 내가 무릎과 팔을 다치지 않았더라면, 캐리어 하나쯤은 끌고 갈 수 있었다. 끌고 가는 게 포장하는 것보다 편리할 때도 있다. 가방에 차곡차곡 물건의 경중. 부피, 모양을 가려 요령있게 넣는 게 글쎄, 여행을 자주 다닌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그 가방을 다시 박스에 넣고 테잎을 붙이는데 손에 쩍쩍 들러 붙는 것도 골치다. 도착한 택배를 푸는 건 쉬운 일인가. 포개지고 접혀진 물건 가즈런히 펴서 제자리 찾아놓는 일도 일은 일이다. 우체국 5호 박스 1개를 펼쳐 가방을 그 안에 넣은 다음 다른 한개를 꼭 맞춰서 덮어씌우고 테잎을 붙이는 작업이 끝났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1.06

노도 일기 35

노도 일기 35 "진이야! YTN 틀어줘!" 내가 명령하자 금세 화면이 펼쳐졌다. 실내에 왕왕거리는 소음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그 소음이 싫어 이곳에 와서 거의 TV를 켜지 않았다. 오늘은 TV를 켜도 좋을 만큼 모처럼 자유 시간을 회복?한 날이다. 노도 섬에 머문지 100일 만이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그리움의 언덕' 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며칠 후 노도 섬을 떠나더라도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영혼속에 머물도록 동백꽃 피어나는 구운몽원으로 움직여 볼 심산이었다. 전해 오는 말로는 서포 선생께서 앵강만 바닷가 기암괴석이 묘한 풍경을 이룬 그곳에서 이따금 낚시를 하셨다는 그 장소에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다. 돌아가신 후 임시로 머물렀다는 허묘도 너무나 계단이 높아서 엄두를 못 냈는데 나는 ..

카테고리 없음 2022.01.05

100일 기도

100일 기도 딸은 나의 노도 섬살이를 백일기도라고 이름을 달았다. 내일이면 노도 섬 작가창작실에 입주한지 꼭 백일이다. 딸이 벡일기도라고 이름 달지 않았어도 나 역시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기도 없이 어찌 큰일을 진행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좋아해서, 글을 쓴다고 하지만 글을 내가 쓰고 있다기 보다 나는 글이 쓰여지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나 이외의 다른 강력한 에너지가 있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글을 쓰는 것, 그 노동의 강도는 엄청나다. 겉 보기에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어 한유해 보이고 어쩌면 신선놀음처럼 보일지 모르나 날이 갈수록 대체 내가 왜 이렇게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나 회의할 때도 있다. 토니어 크래거가 말한 것처럼 '문학은 때로 저주'일 수도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2.01.04

독방

독방 임인년 1월 1일. 나는 독방에 갇혔다. 누가 나를 가둔 게 아니다. 내 스스로 갇혀버린 것이다. 추위가 풀려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옴싹 할 수가 없다. 12월 31일을 깃점으로 3,4개월에 걸친 내 작업을 종료할 계획이었다. 종료는 초고 수준이다. 초고지만 다른 창작보다 열배는 더 힘이 들었다. 옛 사람들은 우선 자. 호, 아명, 관직명, 죽은 뒤에 시호 등 부르는 이름자가 하 많아 고증하고 분별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작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않는 한 부족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끝 무렵에 이 무슨 일인가. 그렇다. 문학기행 다녀오던날,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는 사고만 터지지 않았으면 나는 계획대로 작업을 종료하고 임인년 새해 아침을 멋지게 맞이할 수가 있었다. ..

카테고리 없음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