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전화
끝없는 고요가 흐르는 아침이었다.
바람이 거세지 않은 날. 내 집 앞 앵강만 바다는 평화롭고 잠잠하다. 바다가 흐느껴 울지 않는 날은 흰 갈매기 떼가 여유만만하게 바다 위를 날고, 뒷산의 동백나무 숲도 묵묵하고 의연하다. 노도 섬 일대가 고요속에 갈앉는 날이다.
"모친께서는 잘 계시는가?"
아들의 목소리는 푹 잠겨 있었다. 잠긴 목소리와는 다르게 이몽룡이 성춘향이에게 안부를 묻듯, 아들의 말은 늘 그만큼의 유머를 달고 있었다. 오미크론까지 출현하여 전국이 뒤숭숭한 때에 두 녀석 건사하느라고 지쳐있는가. 에너지 충만한 애들이 코로나19 이후 학교에 거의 가지 못했다. 집안에서의 생활이 길어질 수록 가족들, 특히 그애들 아빠의 노고가 심해진다. 녀석들은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서일까. 나는 무슨 걱정거리가 생겼는가 지레 걱정부터 앞섰다.
"응! 그래! 나는 잘 있어. 이제 글 웬만큼 썼고 짐도 다 보냈어. 낼모레 이 섬을 작별하고 집에 간다. 무슨 일 있어?"
"엄마 친구있지? 신촌 S교회 권사님! 그분이 암을 앓다가 엊그제 돌아가셨대요. 지훈이가 엄마 안부를 물어보네요."
아들의 친구 지훈이는 S 교회 청년회 소속이던가. S 교회는 내 친구를 비롯, 선배님들도 다니는 서울 신촌 일대에서 매우 규모가 큰 교회였다.
"그랬구나! 나도 다른 친구를 통해서 소식들었어. 참 좋은 친구였는데. 후덕하고 늘 웃고 다녔지. 가정도 원만하고 암에 걸릴 이유가 없는 친군데 안됐어!
나는 아들에게서 까지 내 친구의 죽음을 듣자 심정이 매우 착잡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다. 병 없이 자연사한 것도 아니고 암을 수년 동안 앓으면서 수술도 여러 차례 했다는 친구의 죽음은 과연 하느님 뜻일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함께 어울려 여행다니고 즐겁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몹시 허전하고 비감해진다.
암은 누구에게나 위험인자라고는 하지만 그 친구가 암에 걸릴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하느님 신앙이 깊고 성격 또한 원만한 친구였다. 아들 세 명도 순조롭게 사회에 나아가 좋은 자리에 있다. 남편은 베테란 파일럿으로 생활도 풍족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선하고 밝은 친구였으니.
"건강 조심하시고 잘 올라오셔요."
근무중인지 아들은 전화를 서둘러 끊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은 엄마 없는 두 녀석 건사하기 노상 힘들어 하면서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예쁜 며느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몇년은 내가 도와주기는 했다. 그러나 아들은 내가 계속 집안일에 시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안해하고 짐스러워했다.
"이런 거 해오지 마세요! 우리끼리 잘 하고 있어요. 애들 외가에서 반찬이랑 다 보내주시고 애들도 이제 커서 저를 많이 도와주어요. 제 걱정은 마시고 어머니는 '김만중 소설'을 한 번 써 보시죠."
애초 '김만중 소설'의 단초는 아들의 강력한 권고에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큰수술 이후에 병상에서 구운몽을 읽는 것을 아들은 알고 있었다. 대개 중요한 집안팎의 일에서도 나는 아들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다. 아들의 말은 예지가 있었다고 할까. 아들의 판단이 대부분 적중했다. 그 아들이 나에게 전화해서 제 친구가 엄마 안부를 물었다고 전했다. 눈시울이 뜨거워 질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느라 신촌거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신명이 넘치던 아들과 그 친구들의 소년 시절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미 하 오랜 시간이 흘러갔다. 이 아침 아들의 전화가 나에게 또다시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지금 잘 죽기 위해서 소설과 분투,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삶과 죽음은 멀리 동떨어진 게 아니다. 우리의 일상속에 공존한다.
아들아! 엄마 안부보다 너의 건강과 두 녀석 건강을 더 잘 챙겨라.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라는 말이 실감을 더해주는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