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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저바다

아름다운 저 바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망설임이 앞서면서 썩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이유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경우에 특히 그렇다. 새로운 지역에 왔으니 새로운 풍경, 이를테면 그 지역에서 이름난 곳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이다. 잠시 짬을 내어 움직일 수는 있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움직인 이후가 항상 문제였다. 집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몰두했던 일에서 놓여나 자유를 누리고, 많은 시간을 다른 장소에서 다른 풍경을 감상하고, 평소와는 다른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신다. 그렇듯 문학기행이라는 명분으로 기분 전환을 하고나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융통성 부재인가. 할 일을 미루게 되어 걱정되는가. 귀가할 날이 가깝고 일은 더뎌 애태우는..

카테고리 없음 2021.12.29

수뢰둔水雷屯

수뢰둔水雷屯 수뢰둔이 이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다니 기가 콱! 막힌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새벽에 잠이 깨서 책상으로 나오니 나오자마자 발이 시렸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양발을 신고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엊저녁 침투한 찬 바람이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손도 시리고 어깨가 시리다. 흠. 춥긴 춥구나! 머플러로 어깨을 감싸고 앉아 문자를 날렸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 노도에 오신다는 남해 선생님이 걱정되었다. 내가, 우리가 쓰는 작품에 도움을 주기 위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오신다 했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이미 세상에 나온지 오랜 자료는 식상한다. 물론 가장 튼실한 기둥처럼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대해 볼 여지가 있다. 갑자기 맹추위로..

카테고리 없음 2021.12.18

일 좀 제대로 하자

일 좀 제대로 하자 나는 옆 집에서 선동하자 얼씨구나!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하던 일을 떨치고 나갔다. 먼 데가 아니고 우리가 석달째 머물고 있는 노도 섬이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일 좀 제대로 하자고 결심한지 사흘도 못 되어서 나는 멋에 씌어서 부둣가로 달려간 게 아닌가. 후회는 없지만 내 앞에 닥친 일이 벅차다. 바깥에 나갔다 온 날은 유난히 피곤을 느꼈다. 기분이 상승하고 고양된 것 같더니 그 상승과 고양은 결과적으로 피로감을 몰고 왔다. 기분 잠깐 좋았으나 내 본업은 그만큼 지체되고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디까지 보았더라? 노트 북을 열고 한동안 헤맨다. 그렇다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동물이 줄창 책상에만 붙박이로 앉아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늘..

카테고리 없음 2021.12.10

노도 섬을 돌다

노도 섬을 돌다 어제 저녁까지 나는 심신 모두 상당히 고달파라 한탄했다. '머리가 푹푹 빠지는데 소설이 뭐길래 너는 불통으로 앉아서 소설만 쓰고 있니?'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털갈이 할 때도 아닌데 털이 뭉턱 뭉턱 빠지면 사람이 되어가지고 보고만 있을 거냐?' '무슨 해결 방법을 찾아야지 엎드려 글만 쓰면 젤이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 머리 다 빠진 다음 대머리박사가 되면 대체 그 꼴로 집에 돌아 갈 수있을 것 같아? 차라리 앵강만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든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글 좌판 걷어치우든지, 양단 간에 결정을 하라고! ' '한심하다. 인간아! 너가 그리 맹꽁이 인 줄 진즉 몰랐다니 내가 미련했지!'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떨어져 쌓이는데 꼴 좋다. 거울..

카테고리 없음 2021.12.08

벤또의 추억

벤또의 추억 우리 어릴 때 도시락을 벤또라 불렀다. 벤또가 무슨 말인지. 어디서 그 말이 전해졌는지 아무 것도 모르고 '벤또' 하면 점심밥을 연상했다. 대개 벤또는 양은으로 된 직사각형으로 학교갈 때 의례히 책가방에 챙겨가는 밥그릇이었다. 겨울철에는 각자 싸가지고 온, 60명의 밥그릇 벤또가 교실 중앙에 놓여진 난로 위에 차곡차곡 올라왔다. 어쩌다 난로의 제일 밑에 벤또를 얹어놓으면 누룽지까지 긁어먹을 수 있는 호기를 얻게 된다. 4교시 수업이 끝나야 점심시간이다. 아직 꽤 시간이 남았다. 친구들은 서로 앞 다투어 자기 벤또를 될수록 밑에 얹어 놓아 누룽지 먹는 행운을 누리고자 한다. 3교시 수업이 종료되기 무섭게 난로 앞으로 진입하느라 늘 아우성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로위에서 밥도 익고 김치도 같이..

카테고리 없음 2021.12.01

아파트 언니

아파트 언니 한 곳에 오래 살다보니 단지 안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그 만남이 뜸하게 되었어도 어쩌다 마트에서 만나거나 길에서 만나면 우리는 오랜 지기처럼 손뼉을 치고 주먹인사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나는 젊은 엄마들과 친했다고 할까. 저녁 나절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심심찮게 대화를 나누는 엄마 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이번 가을 집을 정리하고 귀촌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곳에 머물며 그 소식을 전해듣고 그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잘 하면 내가 소설을 다 쓰고 집에 도착할 때 즈음해서, 그녀가 이사가는 모습을 불 수있고, 작별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웬일인지 그 엄마와는 첫대면부터 정이 갔다.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고양이도 내가 여기 노도라는 섬에 머..

카테고리 없음 2021.11.27

앵강만의 노을

앵강만의 노을 낮에 저 아래 '서포의 책' 으로 걷기를 나가지 못하고 해가 저물었다. 몰두하다보면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 나에게 몰두는 축복이었다. 몰두하지 못하고 심신이 어지러운 날은 하루해가 여삼추였다. 더구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먼 타지에 와서 본래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내가 견뎌내기 힘들어한다. 글을 쓰다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거나 별로 고민하지 않고서도 유난히 글줄이 잘 풀리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던가. 나는 해질녘까지 책상을 지켰다. 대체로 하루 일과를 제대로 진행한 날이었다고 흡족히 여겼다. 갑자기 밖으로 나가 상쾌한 바닷바람을 쏘이고 싶었다. 누가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급히 옷을 더 입고 머플러를 둘렀다. 집밖으로 나갔다. 아..

카테고리 없음 2021.11.27

머리카락 수난 1

머리카락 수난 머리카락 때문에 지금 나는 일대 수난을 겪고 있다. 10월 13일 새벽에 일어나 여늬때 처럼 샤워를 하고 나서 나는 늘 하던 대로 욕실을 정리했다. 앗! 이게 뭐야? 어머머! 이럴 수가? 이거 무슨 일이지? 나는 경악했다. 펄쩍 뛸 만큼 놀랐다. 혹시나 배수 구멍으로 생쥐 한 마리가 기어들어와 엎드린 줄 알았다. 아니면 그 숱한 날벌레가 그들의 살기좋은 한때가 흘러갔으니 집단 투신 한 줄 알았다. 그놈들의 색깔이 늘 검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므로, 또한 처음 이곳 레시던스에 왔을 때 창문 틀, 그 틈마다 수십 수백의 날벌레가 끼어, 혹은 살아 헤엄치고 혹은 죽어 둥둥 떠있거나 죽은지 오래되어 물이끼에 찰싹 붙어버린, 아마도 그들 중 한 종류일거라고 쉽게 생각했다. 웬걸! 그건 내 머리에서 빠져..

카테고리 없음 2021.11.24

한파

한 파 기상청의 오늘의 일기 예보는 한파였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아니 다른 지역에도 눈발 휘날리고 길이 미끄러워 출근길 조심하라고 한다. 하긴 시기적으로 추울 때도 되었다. 전에 고3 생들 수능보는 날은 대개 영하권으로 떨어져 학부모들이 걱정했다. 올 수능 때는 날씨가 포근하더니 오늘에 이르러 한파 예보를 듣게 되었다. 새벽에 책상으로 나왔다. 앉자마자 한기가 몰려왔다. 노도에 와서 두 번 째 느껴보는 한기였다. 오늘의 한기는 지난 번보다 좀더 심했다.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당장 온 몸으로 냉한 공기가 둘러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추위가 제일 무서웠다. 어려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두고, 교육열이 남다른 부모님 덕분에 멀고 먼 시내 밖에 있는 국립 ..

카테고리 없음 2021.11.23

풍지관의 하루

풍지관의 하루 걸어서 오지 마을에 다녀와 그 여독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깨자 바로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못 되었다. 모처럼 숙면을 한 셈이었다. 숙면을 했는데도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나에 대해서 짜증이 났다. 짜증의 원인은 몸이 고단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또한 뇌화부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움직였다고 여겼다. 우선 내 신체조건에 불리한, 무리한 강행군이라는 것, 낙엽쌓여 미끄러운 오솔길, 왜소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고 아슬한 길인 줄 모르고 따라나섰다는 점,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저 아래 검푸른 바닷가쪽으로 굴러떨어질 듯, 위험한 산길을 예상하지 못하고 '좋은 집' '호감가는 마을' '머물고 싶은 곳' 이라는 말을 우직스럽게 믿..

카테고리 없음 2021.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