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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관의 하루

능엄주 2021. 11. 21. 20:53

풍지관의 하루

 

걸어서 오지 마을에 다녀와 그 여독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깨자 바로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못 되었다.

모처럼 숙면을 한 셈이었다. 숙면을 했는데도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나에 대해서 짜증이 났다.  짜증의 원인은 몸이 고단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또한 뇌화부동에 기인한 것이었다.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움직였다고 여겼다.

 

우선 내 신체조건에 불리한, 무리한 강행군이라는 것, 낙엽쌓여 미끄러운  오솔길,  왜소한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고 아슬한 길인 줄 모르고 따라나섰다는 점,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저 아래 검푸른 바닷가쪽으로 굴러떨어질 듯, 위험한 산길을 예상하지 못하고 '좋은 집'  '호감가는  마을'  '머물고 싶은 곳' 이라는 말을 우직스럽게 믿은 단순미련한 결정이 못내 나자신을 짜증과 혐오로 몰고갔다. 

 

오늘 작업하기는 다 틀렸구나! 작업은 마음이 평정되고 고요할 때 가능하다. 집중하려면 일단 마음 자체가 고요하게 갈아앉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럴 때 풍지관괘의 의미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땅위에 바람이 부는, 그렇다. 땅위에서 바람이 일어나나?  바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나?  바람의 근원은 어디인가?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사이 짜증의 강도는 더 치솟았다. 왜냐하면 나는 무슨 바람이든 바람에 흔들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닷물 잔잔하고 햇살 환한 11시가 넘은 시간, 나는 집밖으로 나섰다. 앵강만 바다를 바라보며 '하낫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나는 맨손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산에서 막 내려왔다.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여자였다. 그 여인이 나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구운몽원에 올라갔다가 내려 올때 나는 반대편 길보다 험한 산 길, 작은 돌이 많아 미끄러질까 두려웠다. 지난 봄 현장답사 때 멋모르고 한 번 걸은 것 뿐  지금은 밟아보지 않은 길이었다. 구운몽원도 이곳이 머무는 두달 여 동안 관광온 교인 가족들을 따라서 고작 3번 올라갔을까.  그래서 놀랐다. 일행  4명 중 제일 먼저 산을 내려온 그 여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색이 희고 맑았다. 첫인상이 좋았다.  얼핏 보아도 식자층일거라는 예상이 왔다. 한 참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이곳은 토요 일요에는 관광객, 등산객이 제법 온다. 혼자서는 산길이 엄두가 나지않아 나는 관광온 사람들을 따라 구운몽원, 사씨남정기원을 그렇게 3번 정도 올라간 것뿐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노도호 배를 타고 이 섬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고 한다.

나는 사람이 그리웠던가. 그 여인은 직장에 다니다가 암에 걸려 휴직을 하고 남해에 와서 휴양겸 살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살고 싶은 곳이라고 화답했다.  그녀는 대뜸 나에게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말했다.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저녁에 딸이 전화했다. 나는 낮에 만난 등산객에 대해서 말했다. 인상이 해맑았다고.  좋은 사람같다고.

"인상보고 몰라. 요즘 신사복 단정하게 차려입고 강도짓 한다잖아."

- 얘는 무슨 강도씩이나? 너 왜 그렇게 의심이 많냐?

"엄마가 사람을 쉽게 믿는 것 같아서 걱정돼서 그래."

 

- 나는 내 직관을 믿어. 더구나 오늘의 내 삶의 지표는 풍지관이거든, 모름지기 새 바람,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어온다는 뜻이라고. 바람이 불어야 변화가 오고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는 거야."

"꿈보다 해몽이 더 좋네. 그러나 잘 알아보고 사귀어. 엄마가 적적한 섬에서 지내더니 사람이 반가운 모양이네." 

- 변화의 새 바람을 맞이하려면 우선 나자신부터 관하는 거지. 그런 다음 보여지는 나를 점검해 본다고.

 

 "어려워! 암튼 외지에서 사람 함부로 사귀지 마! 엄마에게 그럴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잖아." 

- 얘는 내가 하는 일마다 딴지만 걸더라. 너한테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다."

  나는 다시 풍지관 속으로 들어갔다. 관아생 관기생을 깊이 살펴보기 위해서.

 

 걷기 어려운 산길을 넘어가 호수 같은 아름다운 바다가 양 갈래로 들어앉은 오지 마을에 다녀은 날, 나의 무릎은  금산 보리암, 용문산 용문사, 망운산 화방사에 다녀 온날 보다 훨씬  더 아팠다. 전체적으로 기가 팍 떨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풍지관의 道, 관아생 관기생에 대한 성찰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