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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언니

능엄주 2021. 11. 27. 13:58

아파트 언니

 

한 곳에 오래 살다보니 단지 안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그 만남이 뜸하게 되었어도 어쩌다 마트에서 만나거나 길에서 만나면 우리는 오랜 지기처럼 손뼉을 치고 주먹인사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나는 젊은 엄마들과 친했다고 할까.  저녁 나절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심심찮게 대화를 나누는 엄마 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이번 가을 집을 정리하고 귀촌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곳에 머물며 그 소식을 전해듣고 그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잘 하면 내가 소설을 다 쓰고 집에 도착할 때 즈음해서, 그녀가 이사가는 모습을 불 수있고, 작별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웬일인지 그 엄마와는 첫대면부터 정이 갔다.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고양이도 내가 여기 노도라는 섬에 머물고나서 적적해서인가 새삼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였다. 하물며  그 사람은 애초부터 정리情理가 도타웠지 않은가. 그가 귀촌하므로 이웃관계가 종료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쓸쓸했다.

 

그처럼 늘 마음 편하고, 수다한 말은 없어도, 서로 믿음이 가는 이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세태가 아닌가. 또 다른 엄마도 있다. 만나면 언니! 하고 정답게 나를 부르면서 달려오는,  홀로 된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단지안에서 칭송이 자자한 후덕한 중년이었다.  그녀들이 나를 부를 때는 아주머니도 할머니도 아니었다. 더구나 선생님도 아니고 그냥  '언니' '아파트 언니' 였다. 

 

"언니! 시장 다녀오셨어요? 여기 좀 앉았다 같이 들어가요!"

우리가 벚나무 벤치에 앉아있으면 야구르트 아줌마가 다가온다.  벚나무 벤치에 앉았다가 함께 들어가자는 그 엄마가 야구르트 아줌마를 여기로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잘 아시는가 봐요!"

야구르트 아줌마가 나와 그 엄마를 번갈아 보며 묻는다.

'네! 우리 아파트 언니예요!"

우리는 저녁해가 넘어갈 때까지 야구르트를 홀짝홀짝 마시며 이야기 장단을 맞추곤 했다.

아파트 단지안에서 나는 그들의 언니였고 언제나 야구르트를 사는 것도 나보다 훨씬 젊은  이웃 엄마들이었다.

 

그러데 이변이 생겼다.

나는 옆집 시인의 권유로 캄캄한 저녁에 바닷가로 나갔다. 철럭!철럭! 파도치는 소리가 이채로웠다. 하늘엔 별빛이 총총하고 밤바다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쉴새없이 철럭이고 있었다.

 

"으하하하! "

갑자기 옆집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낚싯대를 거머쥐고 고등어 새끼를 높이 끌어올렸다.  극적인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이곳 주민이 아마도 낚싯대를 나의 옆집 사람들에게 잠시 빌려준 것 같았다. 나는 파돗소리에 정신이 팔려 방파제를 홀로 걷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 연속 터졌다. 고등어떼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인가. 살아있는 생명을 끌어올리며 지어내는 그들의 고조된 웃음소리가 밤바다를 출렁거리게 하는 것 같았다.

 

"어르신도 한 번 해보시지요?"

어르신은 바로 나를 지칭한 것 같았다. 나는 사양했다. 낚싯대가 무거워 보였고, 나는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꿰어 파닥거리는 고등어 새끼가 안타까웠다. 전에 고등어 구이를 먹으러  친구와 함께 돈암동 시장안에 있는 생선구이 집으로 여러 차례 간 일이 있었다. 집에서는 심한 비린내를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없이 우리는 자주 그 생선구이 집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걸려든 고등어는 다 자란 큰 놈이 아니고 대부분 붕어같은 새끼였다. 

 

그 다음 날 옆집의 요청으로 한 번 더 밤바다에 나가고는 나는 시간도 아깝고, 바닷바람이 썰렁하기도 해서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어르신' 이라고 호칭한 그 당사자가 나를 가리키며 '할머니!  어쩌고 하는 소리를 내가 듣게 되었다. 일부러 들으려는 게 아니었다. 바로 내 앞에서 3발자국 떨어진 거리였기에 들은 것이다. 그게 한 번이 아니었다. 또 한 번 내가 들을 수있는 지척에서 옆에 앉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가리켜  '할머니' 로 지칭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할머니' 하면서 내가 있는 쪽을 흘깃 바라보는 품이 내 이야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내 피가 얼굴로, 머리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곳에 할머니로 온것이 아니었다. 오래 터잡고 살으려고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온 것도 또한 아니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서포를 쓰려고, 그것도 공개적으로 응모하여 노도 창작실에 입주한 것 아닌가.

나에게 '할머니!' 하고 부르는 것은 미국의 대학생 손녀와 고교생 손자, 그리고 한국의 고교생, 중학생, 두 손자를 다 합쳐서 손자녀 네 명뿐이다.  나에게 무슨 혐의가 있길래 남들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할머니'라고 호칭하는지 그 저의가 참으로 맹랑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엄연히 할머니 연대지만 그 사람에게 내가 그렇게 불리울 이유는 없다. 

 

고등어 낚시를 보러 가던 날 밤에  그는 나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어르신도 한 번 낚싯대를 잡아보시라'는 그 말.'

그 남자는 낚싯대를 한 번 잡아보라는 그 말을 내가 사양해서 분노한 것인가. 내가 여기에 올 때부터 무슨 감정이 있었던가.  뜻밖의 불유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행여 내가 잘 못 들은 것, 잘못 생각하는 것이기를 바라지만 이건 거의 사실이다.

 

'언니' 라는 호칭을 내가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호칭이다.  '선생'도 보통명사로 통한다. 허구많은 호칭에 왜 하필 늙음을 강조하는 듯한, 아니 '할머니' 를 타인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곳 노도 섬에 더 머물기가 싫어진다. 안 그래도 오래 비워두었던 신축 건물에 입주하여 불량식수 (녹물) 사용으로 머리카락이 뭉턱뭉턱 빠지고, 세수할 때마다 얼굴이 쓰라리고 따거워 괴로운 판에, 그 남자의 '할머니' 호칭은 내 잠재의식을 교란시키고 나쁜 마음이 솟아나게 했다.

 

'언니! ' 나를 언니로 부르는 정다운 이웃이 이사간다는데 이참저참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엄마도 영영 우리 단지를  떠나는 마당에 아파트 언니가 보고 싶을 지도 모른다. 아파트 언니가 왜 안 보이지? 지금 많이 궁금해하고 있을 것같다. 

문제는 소설이다. 이제 겨우 두 권을 쓴 셈이다.  한 권 분량을 더 써야만 이곳에서의 내 임무가 완료되는 것이다. 소설 쓰는 내가  섬 토박이 남자에게 아니꼽게 보였던가. 혹 나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가. 차라리 면전에서 나를 쳐다보고 직접 '할머니' 로 부른 것과는 또 다른,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 흘깃 보는 그 태도가 더욱  역겨웠다. 

 

그렇다고 '너 왜 그랬니?' 하고 내가 먼저 화를 내거나 따지고 들 수는 없다. 그럴 시간도 가치도 없다. 다만 글로써 내 감정을 정리하고 추스리고 있는 것 뿐이다.  자기네 지역에 외지인이 들어왔다고 갑질, 홀대하는 방법인가? 나는 마을에 잘 내려가지도 않는다.  내려갈 시간도 없다. 무슨 하자, 잘못을 저지른 적은 더구나 없다. 나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어 이로울 게 없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무고하게 먼저 나를 해친 사람들이 잘 되는 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이 섬에 동백꽃이 제 아무리 붉게 피어나도 , 앵강만의 저녁 노을이  지극히 환상적이라해도  이 섬은 더 이상 발전하긴 틀렸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