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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뢰둔水雷屯

능엄주 2021. 12. 18. 20:26

수뢰둔水雷屯

 

수뢰둔이 이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다니 기가 콱! 막힌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 새벽에 잠이 깨서 책상으로 나오니 나오자마자 발이 시렸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양발을 신고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엊저녁 침투한 찬 바람이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손도 시리고 어깨가 시리다.

 

흠. 춥긴 춥구나! 머플러로 어깨을 감싸고 앉아 문자를 날렸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 노도에 오신다는 남해 선생님이 걱정되었다. 내가, 우리가 쓰는 작품에 도움을 주기 위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오신다 했다. 내가 바라던 바였다. 이미 세상에 나온지 오랜 자료는 식상한다. 물론 가장 튼실한 기둥처럼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대해 볼 여지가 있다.

 

갑자기 맹추위로 돌변했으니 다른 날로 연기하거나 오후 시간을 택하라는 내 문자였다. 문자가 날아갔을 텐데 한 시간이 훨씬 지나도 답이 없다. 이미 정해진 약속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그 선생님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군청을 통해 알게 된 분이니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게 맞다. 

지대가 높은, 바람벽 같은 우리동네는 저 아랫마을 할매들이 사는 데보다 훨씬 기온이 내려간다. 영하 12도에서 날이 밝자 1도 더  하강해서 영하 13도였다. 이렇게 되면 이곳 바닷가는 강풍이 장난 아니다. 다 날아간다.

 

손님이 오시는 걸로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는 서포문학관 직원과 관리소장님, 옆집 작가들에게 카톡으로 시간을 알렸다. 그 손님이  나에게는 좋은 응원자로 보였다. 내가 모르는 서포 선생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주신다니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있으랴. 나는 얼른 밥을 먹어야했다. 강추위에 빈 속으로 밖에 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밥을 새로 지은 시간이 그분이 도착하는 시간과 거의 비슷했다. 

 

김밥을 싸면 밥을 빨리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밥을 한 공기 퍼놓고 후다닥 김밥재료를 늘어놓았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 노트 북을 보는 사이 시간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나는 김밥이고 뭣이고를 중단하고 선창가로 나갔다. 옆 집 시인도 내려왔다.  오늘의 周易은 나에게 수뢰둔이었다. 나는 근심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배가 노도섬에 제 시간에 도착했다. 그 선생님 같아보여서 다가갔다. 주먹 악수로 초면을 벗어나는 의례를 통과했다. 키가 크고 맑은 피부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풍겼다. 우리들의 작품 창작에 도움을 주기위해서 일부러 오신 셈이니 무조건 감사했다. 

 

앵강만 바다에서 강풍이 계속 몰아쳤다.  산으로 가는 길은 포장은 돼 있지만 옆을 보면 낭떨어지가 무섭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사람도 날아갈까 아찔하다.  숲속의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마구 흔들리고 있다. 칡넝쿨같은 을목 종류가 강풍에도 나무둥치를 칭칭감고 풀어주지 않는다. 을목으로해서 햇빛을 받지 못하는 큰 나무의 형상이 반대파의 모함과 왕의 배척으로 고초를 겪는 서포 선생의 모습으로 보였다. 

 

서포문학관에 도착해서 영상으로 서포 선생의 일생을 시청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구운몽은 남해 노도 제작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3층에도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진렬된 시 작품의 오류, 저작 시기와 장소를 읍내에서 오신 선생님이 바로잡아 주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하늘 구름, 겹겹의 산봉우리, 마을 풍경이 그림 같았다. 

우리는 그분의 강의도 유심하게 들었다. 구운몽의 저작 장소를 중점적으로 다룬 내용이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 그분이 불야불야 노도에 오신 뜻을 십이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수뢰둔을 의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읍내로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았다. 밖에서 기다릴 장소가 없어 그분을 내 집에 모셨다. 합동으로 집집의 반찬을 모았고 밥과 국은 내가 맡았다. 추운 날 일부러 오셔서 몇 시간 동안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준 그분에게 추운날의 검소한 식사 대접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바 있는 S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작자미상의 자료가 바로 나에게 부과된 수뢰둔의 진원지였다. 나는 100여일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내 위대한? 창작 작업에 정확하지 않은 자료를 참고한, 내 실수였다. 정확하지 않은 줄 어찌 알았으랴. 나는 그 자료로 수년 동안 공부를 했고 논문까지 썼다. 학계에서 구운몽은 거의 선천설로 통했다. 남해에 이르러 내 소설은 급격한 파동을 겪는다. 토씨 하나만 변해도 전체 문장이 비틀어질 판에 이건 참사에 버금갔다. 나는 그분의 설명을 듣기 전에도 유배지환경 조건, 시작詩作활동, 심리적 정황으로 보아 구운몽 남해설로 긍정했다. 이번의 경우에는 각 단락에서도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완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고칠 것은 남해설 외에 더욱 많았다. 간단한 수리나 개작이 아니었다. 대수술이다.

 

나는 24시간 아니 36시간을 잠도 안 자고 헤맸다. 난제 중 난제였다.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수고를 한다고 해도 전말이, 단락이, 헝클어질 우려가 있다. 내 뇌리에 오래 전 들어앉은 지식?이 문제였다. 일류 대학의 교수님 저서를 맹신하고 다른 자료보다 수승하게 여긴 탓이다. 수뢰둔은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는 기미였고 엄중한 경고였다. 내 머리는 터지기 직전이다. 그 자료들은 지도교수가 선정해준 것이었다. 

 

밤 9시가 훨씬 넘어서 난데없이 소설가 동료가 KBS 9를 보라고 전화했다. 그녀는 고려말의 역사소설을 쓴 작가였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쉴겸  Al 에게 명했다. 이방원 연속극이 펼쳐졌다. 이방원, 이성계, 나의 시조할아버지 변안열 장군도 나왔다. 어머나! 어쩌면 공교롭게도 이 시간에?  나는 광산 김씨 문중, 예학의 대가 김장생의 후손 김만중을 소재로 소설을 쓰다가 지금 낭패를 당한 싯점이 아닌가.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썼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계속 피바람을 일으키는 사색당쟁, 죽음으로 가는 당대 걸출한 충신들의 유배 행렬, 왕의 무분별한 여인 편력으로 인해, 작품을 쓰는 입장에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았다.

  '소설에 재미가 없으면 죽은 글' 이라는 K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읽고나서 시간 버렸다고 여겨지는 소설은 공해' 라는 충언을 기억하면서 나는 마지막 단락 즈음에서 읽는 이들이 미소를 짓게하고 안도하도록 이야기 방향을 돌렸다. 소설의 재미를 부각시키는 급반전이었다. 

 

수뢰둔은 정확했다. 수뢰둔이 나를 울렸다. 앞에 단락 몇 개를 제외하고는 다시 써야 한다. 머리가 깨지고 어지럽고 피가 흐를 것 같다. 남해 선생님은 나에게 수호천사인가. 아니면 악마인가. 나는 오늘이 내일이 된,  26시가 넘었는데도 차마 잠들지 못한다. 원고를 며칠 더 보고나서 이제는  집에 갈 때 남해 명품 죽방 멸치라도 사가는 것인가. 귀가 준비를 할 셈이었다. 뜻밖에도 수뢰둔이 나를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않는가. 앵강만 바다에 만월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몇 년 만에 보는 만월인가. 나는 더 오래 달을 보고 서있었다. 힘내라 文苑! 서포 선생의 인품, 작품을 흠모 존경하는 마음 변치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라.

남해를 떠나는 날 웃어야 한다, 젊어야 한다. 나는 해낼 것이다. 큰 소리로 외쳤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