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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水位를 바라본다/변문원 옮김

수위水位를 바라본다 박노해 노동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 마당가에 서면 저수지가 보이고 그 아래 층층의 다락논이 보이고 긴 방죽 너머 갯벌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가뭄이 오고 논밭이 갈라질 때면 저수지 바닥까지 내려가는 수위를 보며 다들 애가 타고 어린 나도 속이 탔다 그러다 장마가 지고 수위가 넘실대면 빗속에서 둑을 메우고 방죽을 막는 어른들 틈에서 나 또한 속이 울렁이고 터질 듯 거대한 수위에 전율하곤 했다 수위水位 물의 크기, 물의 높이, 물의 눈금 수위가 바닥나거나 범람할 때는 자연의 무시무시한 눈금이었지만 수위가 알맞을 때면 풍요와 감사의 노래가 울리는 오선지였으니 오늘 나는 우리 시대의 수위를 바라본다 불만과 불신의 수위 불안과 우울의 수위 탐욕과 무례의 수위 분노와 혐오의 수위 우리들 영..

카테고리 없음 2022.08.09

산후통 앓듯이

산후통 앓듯이 아기를 출산하면 며칠 동안은 병원에 입원한다. 아기는 신생아실로 데려가고, 간호사는 시간시간 산모의 건강을 보살펴준다. 병원에 머물면 특별히 걱정할 게 없다. 그런데 그 후가 걱정이다. 요즘 날씨 무덥고 습도 높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출산후의 그 찐득거리고 칙칙한, 태반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산후통을 심하게 앓던 생각이 난다. 몸 전체가 비맞은 것처럼 땀으로 범벅되고, 밑에서는 하혈이 끊이지 않고 무슨 산골짝 냇물 흐르듯했다. 의사 간호사가 수시로 와서 산모 상태를 점검하지만 그 상황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산모는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대형 병원이라 다행이지 대량출혈로 이어져 동네 병원은 자칫하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출혈이 계속되어 산모는 완전 혼수상태다. 기력을..

카테고리 없음 2022.08.08

단상

단상 1. 구름이 산을 좋아 하는가. 바다를 더 좋아 하는가. 산을 못 떠나고 산 위에 길게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둥둥 거리는 소리, 그 소리는 기계음 같지는 않다. 바닷속에서 나는 소리인가. 고기잡이 배에서 나는 소리인가. 흰 갈매기 몇 마리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호연지기를 뽐내듯 유유히 비행한다. 비 그쳤어도 바람의 강도는 여전히 심하다. 춥다. 춥다고 창문 열지 않을 수도 없다. 환기하려고 서쪽 동쪽 조금씩 열었다. 나무들 주억거리는 모양새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주억거리는 형태도 각각 달라보인다. 자연에 내맡긴 생명체는 나무라고 별 다르지 않다. 오늘도 바깥에는 못 나간다. 싱싱한 채소 구입 외에는 굳이 나갈 일도 없다. 냉장고와 서랍에 뭐가 잔뜩..

카테고리 없음 2022.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