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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통 앓듯이

능엄주 2022. 8. 8. 18:46

산후통 앓듯이

 

아기를 출산하면 며칠 동안은 병원에 입원한다. 아기는 신생아실로 데려가고, 간호사는 시간시간 산모의  건강을  보살펴준다. 병원에 머물면 특별히 걱정할 게 없다. 그런데  그 후가 걱정이다.

 

요즘 날씨 무덥고 습도 높아 불쾌지수가 올라간다. 출산후의 그 찐득거리고 칙칙한, 태반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산후통을 심하게 앓던 생각이 난다. 몸 전체가 비맞은 것처럼 땀으로 범벅되고, 밑에서는 하혈이 끊이지 않고 무슨 산골짝 냇물 흐르듯했다. 의사 간호사가 수시로 와서 산모 상태를 점검하지만  그 상황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산모는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대형 병원이라 다행이지 대량출혈로 이어져 동네 병원은 자칫하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출혈이 계속되어 산모는 완전 혼수상태다. 기력을 차리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버린다. 기력이 쇠진하므로  산후에 태반이 적출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죽어나는 건 산모 본인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방문해서 돌본다. 산모의 허술한 보호자는 산모가 겪는 고통의 정도를  헤아리기나 할까.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놓고 친구 생일 잔치에 간다더니 날이 저물어도 소식이 없다. 피를 너무 쏟아서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은 기억도 못한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데 그 정도의 고통은 세상의 다른 산모도  겪어내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다음 생은 절대로 여자로 안 태어나겠다고 결심한다. 사람을 창조하는 일과 글을 써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비유하기는 좀 무람하다 할까. 

 

노도 섬에서 산통을 앓은 것일까. 산후통은 이제부터인가?  푹푹 삶고 찌는 날씨도 한 몫 거들어 기운을 더 못 차린다. 낮밤을 모르고 잤는지 죽었는지 모르게 잠에 중독이 된것처럼 푸지게 잔다. 자리를 보존하고 누었으니 할일 없는 사람 같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일 잘하는 남자 만나서 농사지으며 실고 싶다는 고 박경리 선생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입맛은 노도 섬에 두고 왔는가. 그곳에서는 노다지 허기가 져서야 사흘 굶은 사람처럼 컵라면이고 찐감자, 삶은 계란을  식탁에 선 채로 맛도 모른 채 먹었다. 

 

왜 이러고 살지?  자신에게  질문한다. 생전의 우리  큰언니가 말했다.  '너가 본래는 엄청 명랑하고 화려한 성격이었다'   '어린애가 멋부리고 까불고 재롱을 잘 떨어,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귀염을 독차지 했다'고  어머니도 모르는  별도의 돈주머니가 있고 그 주머니는  항상 불룩하니 채워져 있었다고도  했다. 학교에서는 음악반에다 작문과 무용을 잘했고 연말 학예회 때는 의례 뽑혀 나갔다. 어린 시절 키도 몸집도 작은 어린이에다 별명은 여우에 까불이였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처럼 묵묵하고 근엄해졌는지 그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큰언니는 열여섯 소녀시절에  C 도 일원의  두목 남자, 그 인간의 애인인 적이 없다. 당시 우리집이 C 시의 중심인데다 앞집이 변호사네 대저택인지라 어불러 인공 아지트로 돌변하게 된데서 모든 흉악한 요설들의 의미를 짚어볼 수가 있다. 기왕 집을 떠나 피난 간 친척집에서 여름 한 철 그럭저럭 잘 배기고 견뎠으면 피해 갈수도 있는 재앙이었다. 친척이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내몰리다시피 쫓겨나와 졸지에 풍비박산!  부모님은  물론 형제들은 웃음, 평화, 자유. 생명권을 박탈당했다. 말을 해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그냥 당했다. 무참하고 잔인하게. 그리고 혹독하게.

 

글 쓰기에 전 인생을 퍼부으면서 원한, 설움, 분노, 아픔을 치유하려고 했던가. 사람을 생산하기보다  덜할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처절한 질곡에 빠져 버린 꼴이 아닌가. 다음 생에 혹 태어난다? 아니다. 안 태어나고 싶다. 문명 높고 살기좋은 다른 나라든 ,우주 밖 다른 행성으로든, 내 존재를 이어가고픈 생각이 없다.

 

이런 사유  이런 발설, 이런 마음 모두  먼 허공으로 날려보내고  조용한 산사에 둥지를 틀고 들앉고 싶다. 지금 이런 심상들을 이름지으면 산후통이 되는가. 산후통이고 뭐고 나는 그저 쉬고 싶다. 고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