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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책과 지성] 신은 인간의 행복을 바랐을까?매일경제/변문원퍼옴

능엄주 2022. 7. 24. 14:48
 

[허연의 책과 지성] 신은 인간의 행복을 바랐을까?

입력2022.07.23. 오전 12:08
앙드레 지드 (1869~1951)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야기는 왜 아름답지 못했나?"
거대한 질문 던지며 딜레마에 도전한 프랑스 대문호


훌륭한 고전은 결국 훌륭한 질문이다. 그래서일까. 훌륭한 문학은 늘 딜레마에 도전한다.

요즘 책을 읽으며 자주 드는 생각이다.

앙드레 지드를 보자.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카뮈와 사르트르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그는 문학을 통해 딜레마에 도전한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좁은 문'은 인간의 딜레마가 되어버린 기독교적 이원론을 정면으로 다룬다. 근대 이전 기독교는 정신과 육체, 즉 이성과 본능이 공존하는 길을 알려주는 데 인색했다. 기독교적 이원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성적 성숙은 본능을 억눌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도 정신과 몸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좁은 문'의 줄거리를 잠시 보자.

일찍 아버지를 여읜 제롬은 외가에서 사촌누이 알리샤와 함께 성장한다. 제롬은 알리샤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알리샤는 제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롬이 청혼했을 때 알리샤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알리샤의 영혼을 압도하고 있는 화두는 마태오복음 7장 13절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이 적다." 알리샤는 본능을 부정하는 것이 곧 좁은 문을 통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알리샤는 요양원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유품을 정리하던 제롬은 알리샤가 남긴 어느 날의 일기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일기엔 "하나님이시여. 다시 한 번 그분(제롬)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써 있었다. 알리샤도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도 결국 본능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알리샤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했을까. 지드는 이런 문장을 소설 속에 배치한다.

"신성함이란 결코 값비싸게 치러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움 속에서 찾아야 할 기쁨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면서 떠오른다. 신은 과연 알리샤가 사랑을 부정하고 불행해지는 걸 원했을까. 나는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리샤의 행동은 교조적 오만일 수도 있다. 언뜻 보면 신성하고 성스러운 것 같지만 그의 선택은 자기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도 못했다.

소설이 출간되자 지드는 엄숙주의자들의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종교계의 비난이 거셌다. 하지만 지드는 꿋꿋했다. 그는 "신은 인간에게 정신과 육체 모두를 향유할 것을 허락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야기는 왜 아름답게 쓰이질 못했는가?"

왜 아름다울 수 없었을까. 그게 신이 시킨 것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 문화선임기자이자 문학박사 시인인 허연기자가 매주 인기컬럼 <허연의 책과 지성> <시가 있는 월요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허연기자의 감동적이면서 유익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praha@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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