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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네 잎 클로버

능엄주 2022. 7. 23. 13:48

행운의 네 잎 클로버

 

삼복 염천에 하루 두 가지 볼일은 버겁다. 버거운 줄 알면서 억지로 두 가지 일을 벌인 건 아니다. 오전 내내 이제나 저제나  새로 출간한 내 책 오기를 고대했다. 15일이 20일이 되고, 다시 22일 금요일이었다. 오전에 봉투는 왔는데 책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제본소 기계가 고장났다고 했으니 오늘도 아닌가보다. 나는 목동에 갈 준비를 서둘렀다. 13시 15분 집을 나섰다. 무덥고 찌는 날씨였다.  남쪽 지역에 비가 내리는가, 그나마 바람결이 위로였다. 

 

지하철은 웬 사람이 이리 많은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설 자리도 마땅치 않다. 지하철이 피서 열차처럼 붐볐다. 종로 3가역에서 내려 한 참 걸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5호선으로  환승한다. 5호선도 초만원이다. 피서 열차가 맞는 것 같다. 자주 다닌 곳이면 엘리베이터가 어디쯤 있는지 알 터인데 오목교역은 생소하다. 길고 높고 먼 계단 오르기에  내 등허리는 줄땀이 시냇물처럼 흘렀다. 

 

시상식 장소에 이르자 내가 찾는 오늘의 수상자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축하 인사를 한 다음 오랜만에 보는 문인들에게 인사드리고 있을 때 문자 오는 소리가 났다.. 책이 우리집에 도착했단다.  집에 갈 일이 발생했다.  나는 나의  애인 같은 책, 내가 3년여에 걸쳐서 갖은 고생을 자초하며 저작한 내 책을 얼른 만나고 싶었다.  수상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돌이켰다. 오목교역까지 제법 먼길을 다시 걸었다. 땀이 전신으로 줄줄 흘러내린다. 겉옷까지 젖어온다. 

 

왕복 4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점잖게 기다리고 있는 내 새끼들!  내 정인들!  정인?이 이처럼 많단 말인가.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 부터 풀었다. 눈물은 이럴 때 왜 나는가. 나는 눈물이 많은가.그동안의  숱한 애로사항이 기억나서인가.  [남해의 고독한 성자] 를 가슴에 안았다. 윤 부인이 베틀에 올라 베를 짜다가 잠에서 깨어난 만중 어린이를 품에 안듯이.

나는 책을 가슴에 안고 책상으로 옮겨왔다. 옮겨오는데 사고가 터졌다.  책이 내 발등을 찍고 발가락을 찍었다. 금세 피멍이 선명하게 번진다. 퉁퉁 붓고 열이 나면서  발가락이 울부짖는다. '좀 조심히 움직여!  너무 아파' 라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이 토요일인 걸 몰랐다. 게다가 몸이 얼른 못 움직인다. 한 동작 한 동작에 고통이 따랐다. 병원엘 갔다. 난데없이 아파트 단지 잔디밭에 네잎 클로버가 보였다. 찌질하고  못생긴 게 아니다. 크고 미끈하고 의젓했다. 그 와중에도 얼른 따서 노트 갈피에 끼웠다. 정형외과는 이미 접수 마감이었다.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데 걸을 수가 없다.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갈 수는 없다. 두 번째 찾아간 정형외과도  마감 후였다. 다시 절둑거리며 걸으니 내가 참 바보같이 보였다. 보인 게 아니라  진짜 바보였다.

 

두 가지 볼일에 대한 비중을 생각했고,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에 대해 반성했다. 융통성을 발휘해야 했다. 

"엄마! 고지식이 탈이야. 축하금만 전해도 될 텐데, 그 사람은 삼복 더위에, 코로나에, 엄마가 오리라고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세상 일 너무 촘촘해도 문제라니까.

궁색한 답변으로 내 상황을 변명하며 간신이 집으로 돌아왔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네잎 클로버라도 만나서 위로받으라는 뜻으로 풀었다. 네 잎 클로버는 어떻게 내 눈에 포착되었을까. 절둑거리며 걷느라고 옆눈 돌릴 겨를도 없었거늘!  자세가 불량하여 발등 종아리 다 땡기면서 허리도 비틀린다. 그런데 네잎 클로버는 신통하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는 참으로 오랜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