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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날 것 같아

능엄주 2022. 7. 12. 07:45

병이 날 것 같아

 

 초저녁 잠이 많은 나의 일상은  자정을 지나 25시 26시에 잠자리에 드는 걸로 변경된지 오래다. 게다가 한 밤이라야 마음이 잔잔해져서 독서에는 쾌적이었다.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것처럼 허무했다. 쓰기 보다 읽고 싶은 게 더 많았고, 아무것도 읽지 않고 지낸 날은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문장이 잘 안 풀리면 평소에 바쁜 핑계 대고 제쳐둔, 내가 구매한 책이든,  나에게  저절로 와 준 타인의 책을 읽는다.

빵값에도 못 미치는  원고료에 목을 맨 처절한 글쓰기를 마치면, 나는 나무와 풀꽃으로 둘러싸인 산촌에 들어가  죽음 직전 까지 하고 싶은 공부, 읽고 싶은 책이 따로 있다. 누가 내 목을 매어 준게 아니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얽매이게 된 세월이 원통하다. 

 

내 언니도 책 좀 읽었다고 할까. 열일곱 살 언니가 깜빵에 들어앉아  죽음에 버금가는 살벌한 공간에서 독서 말고 할일이 뭐가 있었을까. 아버지는 황당한 처지에 놓여진 큰 딸에게 부지런히 책을 날라다 주었다. 부모님의 큰 딸 사랑은 차마 더 할 수 없이 눈물겹고 애절했다. 언니는 억울하다고 말 할 처지도 아니었다. 말을 한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외에는.

 

요즘 처럼 무슨 운동권 학생도 아니고  언니는 그저 공부잘하고 어여쁜 모범 여고생이었을 뿐이다. 그 어여쁨이 화근이었다. 나는 언니의 불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건 완전 날조였다. 꿰어맞추기 형벌이다. 서른 중반의 남자가 괴물이고 악마였다. 언니는 그 남자를 사랑한 적이 전혀 없다. 생일이 동짓달 중순이니 만으로 하면 열여섯이 될까말까한 어린 소녀다. 농촌의 장남인데다 나이도 진득이 먹은 별볼일 없는 사내였다.  별 볼일이 있어도 그렇지, 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상계 현대문학 애독자이던 언니는 그 시절 대만으로 유학? 가려고, 중국어를 달달 외었다. 집안에서 뚝 떨어진 뒷곁의 언니  방에서는 새벽마다  사성조의 중국어 발음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언니의 자유를 찾아주는데 몽땅 헌납했다. 비비 꼬이고 악의적으로 꿰어 맞춘 형벌은 마각을 벗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세월이 3년이었다. 부모님은 공기 좋은  C 시의 외곽으로 집을 옮겼다. 언니는  3년의 영어囹圄에서 풀려나기는 했으나  이미 병을 앓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화탕지옥 불구덩이를 어린 소녀가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겠는가.

 

언니를 생각하면 병이 날 것 같은 작금의 내 처지를 우울하게 받아들일 일만은 아니다. 섬에서의 100여일을 유배 비슷한 고통을 겪었다고 글로나 말로나 떠벌이지 말 것이다. 오히려 행운이었다. 내 연약한   삶의 의지를 단련하고  업시키는  과정이었다. 문학의 지평을 확대하고 고양시킨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 나에게 병은 날 수도 나서도 안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文苑!  옹색하고 사소해지지 말고 푸른 하늘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라!  앵강만 밤 바다를 비추는 구운몽원의 달빛과 별무리를 떠올려보라. 서포 선생의  관절, 혈관, 세포마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던 참람한 우수를 되색여보라. 병이나 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나약한 언어나 뱉어내기에는 매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解氷 淨蓮心. 능엄주 각성하라! 하늘이 너의 피눈물을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