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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약

능엄주 2022. 7. 1. 00:40

심약

 

추진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이만큼 이르는 동안 애로가 무수히 많았다. 전생에 업을 지은 연유일까.  그 업은 대체 어떤 종류인가. 그것도 한두 해지. 어린 시절을 빼고는 별로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살아내기가 몹시 힘들었다.  철통같은 불운을 뚫고 살아남은 게  꿈만 같다.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해도 결과는 10/1도  안 되었다.

 

오래전 문인단체 세미나 갈 때 우연히 옆에 앉은 시인이 내 명찰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매사 수고한 만큼 보람을 못 느낄 거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한 것 같다.  늦게 아호를 지었다. 생애 최초로 3부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어 모 방송국에 표절 당했을 때였다. 내가 다니는 사찰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재주도 능력도 다 타고 났는데 주변에 도와주는 세력이 없다고.  다 올라가 있어 곧 될 둣 하면서 나를 비켜갔다고. 관세음 경을 읽으라고 하셨다. 새벽마다 금강경,  관세음품을 읽는다.  마음을 붙잡으려면  읽을 수밖에 없다.  

 

이번 책은 정말 힘들게 썼다. 세상천지에 힘들지 않고 되는 일이 어디있을까. 내 경우는 죽음 입구까지 갔다. 섬에서 4차례 큰 곤란을 겪었다. 섬에서 병이 나면 헬기가 뜬다고 해서 사흘 낮밤을 문 닫아 걸고 무섭게 앓았다.  몸 전체가 꽈배기처럼 비비꼬이면서 쉴새 없이 구토가 나고 누워있어도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정형외과 약이 독해서였다. 치료는 고사하고 병을 얻었다.

 

남들은 어떨까?  이토록 죽을 만큼 고통을 당하는 것은  나 한사람인가. 나의 선천적 심약때문일까. 

일이 지연되고 여의하지 못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서포 선생을 기억한다. 서울 소공동에서 살다가 졸지에 멀고 먼 외진 섬에 갇혀  3년 2 개월을 견딘 서포 선생님. 낚시나 다니고, 남해에 유배온 선비들과 어울려 유유자적 지내셨더라면 그리 일찍이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외지고 척박한 환경에서 고난의 세월을 살며 저서 집필에 전 생명을 바친 분이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도  생각이 분분하다. 충무공의  우수가 구절마다 페이지마다 새겨져있다. 나라 근심, 전쟁이 격화되면 어디로 피난갈까만  생각하는 무능한 인조 임금님, 노쇠한 어머니의 건강, 자주 병이 나는 아들 염, 흉악무도하고 간흉하다는  원균, 달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깊은 시름하는 충무공을 그리는 가운데  밤이 깊어간다.  2022년 7월 초하루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