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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능엄주 2022. 6. 29. 17:02

요 며칠

 

요 며칠 비가 시원스럽게 주룩주룩 잘 내리지 않으면서 바람은 무척 사납게 불어쳤다. 꽃우물이라는 이 동네에 처음 이사왔을 때 어리던 목련나무가 거목이 되었다. 그 나무의 수백 수천의 가지와 잎사귀가  험한 바람에 마구 휘둘린다.

나 어릴 때 장마철은 운치, 낭만이 있었다. 빗소리에 어여쁜 요정이 숨어 있는지 경쾌하고 맑은 빗소리였다. 무지개는 당연히  비오는 날의 보너스였다. 잠이 솔솔 올 정도로 비오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오늘 날 기후가 거칠어지니까 사람 품성도 험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전기안전공사라는데서 우리집 전기를 보러 온다고 했다. 한달 전 약속인데  오후가 되어도 무소식이라 나의 외출은 무산되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침맞으러 가야하는데  못 가고 기다리고 있다" 고.

온다는 사람이 오지 않고 전화조차 받지 않으니 내 대신 전화좀 해주시라. 부탁을 했더니 한참 후에 전화가 왔고 그 직원은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다른 집들은  사람이 없다나. 전화가 안 된다나. 그래서 확실하게 답변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끈적대고 습도 높은 무더위에 누전이 되면  안되는 것 아니냐. 우리집만이라도 얼른 고쳐주라! 그렇게 해서 우리집 전기 누전에 대한 우려는 해소된 셈이다. 

 

종일 나에게 일손이 안 잡힌다. 출판사가 일정을 늦춘  때문이다. 나는  지난 3월에 군청에서 전화왔을 때  5월 출간을 말했다. 출판사는  남해에서 아직 공식 발표가 없으니, 다른 일을 먼저 하면서 내 책은  천천히 만들어도 좋다고 여긴 것일까. 나는 내가 5월 출간이라고 한 말에 신의를 생각하고  출판사에 몇 차례 카톡, 문자, 메일을 했다. 시안을 보내준다고 말하고는 무소식이다. 이럴 수가 없다. 몹시 바쁘면 적당히 일감을 조절해도 될 터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일이 더뎌지다니,. 밤에 잠도 못 잤다. 새벽 3시가 되도록 엎치락뒤치락했다. 

 

아니나 다를까. 더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가 왔다. 해당관서에서 내 책을 기다리고 있고, 내가 책을 가지고 내려오는 날 점심식사 자리를 만들고, 지난 가을과 겨울에 나 살던 집, 노도 작가창작실을 무료 제공한다고 한다. 늦어도 6월 중에 책이 나왔더라면 내 책 내용이 남해와 노도에 치중되어  - 2022 남해 방문의 해 -  행사에 맞춰  남해 홍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가 있었지 않았겠느냐. 이처럼 기다리고 계신다니 놀랍고 고마웠다. 또한 노도 섬 구운몽원 등산객, 내 소중한 여사님도 나에게 무료 숙박을 제안하면서 남해에 놀러오라고 했다. 노도 섬에 가서 고생한  보람이 있으려나. 기대반 걱정 반이다.

 

일 붙들면 밤을 지새우는 성질머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날씨탓이긴 하지만 요 며칠 바깥 구경도 못했다. 집에 꼭 박혀 있어 갑갑하고 실증이 난다. 더 나이 들어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으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미래의 노쇠한  나를 생각하고 잘 참아내야 하리라. 또 한 권의 책이 우리 아버지의 둘째 딸 이름으로 세상에 출시 되는 좋은  일이니 다만 기다림의 미학이 요구된다 하겠다.

일이 지연되어 어려울때, 심신이 괴로울때, 손가락 관절이 아파 질질 맬 때도  나는 오직 서포 선생을 기억해야 하리라. 서포 선생의 노도 섬을 떠올리게 되면 이 세상에 참지 못할 일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