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세무서를 지나 교통방송국을 바라보며 남산으로 올라간다.
차량들이 빠르게 언덕을 달리고 있어 언제나 그 길목에서 일단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 부지런히 올라가는데 길을 넓히려는지 도로는 파헤친 흙과 돌무더기로 그나마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폭을 좁혀 놓았다. 멀리 산수유의 노릇노릇한 꽃이 보이는 듯 하고 진달래꽃은 산그늘에 숨은 것 같다.
"요즘 억! 억! 하는 소리 때문에 개구리도 놀라서 못나오겠어요."
옷차림과 걷는 모습이 영락없이 <문학의 집. 서울>에 가는 듯 싶은 분이 말을 걸어왔다. "경칩이 지났어도 많이 춥잖아요"
도심지면서도 씽씽 달리는 차량들을 제외하곤 어딘가 늘 적막함이 느껴지는 남산 길에서 동행을 만난 것이 반가워 나는 얼른 대꾸했다.
회고해 보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 몇 해 전에 문인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바뀐 그곳에서 처음으로 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 게 아닌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했다는 바로 그 동네.당시의 신문보도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간장을 서늘하게 했고,
사람의 귀중한 목숨이 책상 한 번 탁! 치는 것을 계기로 억! 하고 종말을 고할 수가 있는 것인 지 참으로 황당했다.
분노한 대학가와 온 나라가 들끓었던 그곳, 묘하게도 악명 높은 그 동네에서 작고한 문인, 아니면 현역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의 밤이 열리고, 아름다운 가곡과 시 낭송, 문학 강연으로 문학애호가와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된다.
남산 기슭에서 발생한 억! 하는 소리와는 또 다른 억! 억! 하는 소리 때문에 TV 보기가 겁나고 신문을 펼치기도 혐오스럽다.
대선자금에 동원된 가히 우주적인 숫자 앞에 기가 질린다. 알려진 바로는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은 0억 원 ,노 캠프는 0억 원이라나.
조사하면 사실여부가 명약관화하게 밝혀지게 되어 있는 일인데도, 잡아떼거나 구구하게 변명을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국민들은 그 금액의 크고 많음에 경악하고 주고받은 사람들의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움에 말을 잃을 지경이다.
요즘 젊은 가장들은 전례 없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 처자식을 동반하여 목숨을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인과 기업가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하학적 숫자의 돈 덩어리를 어디다 쏟아 부었으며 억! 억! 하는 큰돈은 대체 누구를 위한 돈인지 아연할 따름이다. 1억이란 돈은 30대 직장인이 평생을 모아도 한 번 만져볼까 말까한 큰돈인데 TV에서는 최소의 작은 액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 많은 돈으로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 책걸상이나 개선해 주었더라면,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위한 복지기관을 건립 하든가,
요긴하고 급한 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이룩한 일이 무엇인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묻고 싶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 윤활유가 되었다면 또 몰라도.
단 돈 몇 백 ,몇 십 만원으로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거리와 공원 지하철에 넘쳐나고,
갈수록 서민의 삶의 질이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현실에 정치판은 아예 민생은 뒷전으로 한 채, 억! 억! 하는 소리를
후렴구로 깔고 열심히 싸움만 하고 있으니 진작 이민을 못간 것이 원망스럽다는 이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이면 서민 가정의 의식주가 해결되는 마당에 TV와 신문에서 날이면 날마다 억! 억! 하고 있으니
땅속에 엎드린 개구리도 경칩이 되었다고 냉큼 뛰어나올 것 같지 않다.
억! 억! 소리가 난무할수록 배신감과 절망에 떠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마침내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어린 자녀에게 농약을 먹이고 아내를 쏘는 비극이 빈번하게 일어날 확률이 크다.
직업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 차용한 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힌 사람들, 100년 만의 폭설로 혹은 산불로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은 농어민들의 입장이 한 번 되어 볼 수는 없을까. 애국애족이 어디 멀리 따로 있는 것인가.
대다수 국민들을 우롱하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TV 나 신문에서 억! 억! 하는 소리를 이제 그만 멈추어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순이네 집 삽살개 이름 부르듯 쉽게 억! 억! 하고 외쳐대는 무리들까지 4.15 총선을 계기로 깨끗히 사라졌으면 한다.
서민들의 아픈 가슴에 소금을 뿌리고 마구 짓밟는 행위를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올 봄엔 유난히 황사바람이 심하게 불 것이란 일기예보가 있고, 특별히 윤달 2월이 한 달 더 늘어나서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피어도 서민들이 봄을 피부로 느끼기엔 미흡할 것 같다. 그렇다 할지라도 억! 억! 하는 소리 대신 개구리 울음소리가 힘차게 들려오는 남산의 봄을 만나고 싶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콧노래라도 부르며 올라가면 더 좋을 듯하다.
오랜만에 남산에 오르며 봄을, 그리고 나라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