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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하루

능엄주 2022. 5. 17. 08:48

인사동의 하루

 

바람 자고 하늘 맑았다. 약속이 없더라도 인사동에 나가 서울 바람을 쏘이고저 했다. 글 읽고 쓰는 노고가 감기를 불러올까 지레 걱정하여 다른 방법을 연구한 것이었다. 마침 그때 전화가 왔다. 8시도 안 된 시간, 나무갤러리의 연꽃 사진전시회를 알려주었다. 오늘이 마감이라고.  서울에 가면 내 코스는 지정돼 있었다. 언제나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조계사였다.

 

아득한 그 옛날 혹 보천교普天敎 신도였던가. 이상하리만큼 조계사에 가면 외갓집처럼 마음이 푸근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보천교의 교주, 그를 일경에 밀고한 자는 누구였을까. 그는 곧바로 잡혀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최고의 세勢를 누리던 우리나라 토종 종교? 보천교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보천교의 웅장한 건물이 파괴되면서 기둥을 비롯 그 건자재 일부가 조계사 건축에 쓰여졌다고 전한다. 종종 조계사에만 가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정되는 이유를 추적, 가정해 볼 수 있었다.

 

나는 기본적인 의식을 생략하고 바로 나무갤러리로 갔다. 오늘의 사진작가와 도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주먹 인사를 나누고  수 십 점의 연꽃이 진열된 갤러리를 돌았다. 큐레이터가 친절하게 한 점 한 점 설명을 해주어 감사했다. 이전에 내가 보던 사진전과는 매우 대조적이고 특별했다. 전서로 쓴 반야심경을 다양한 연蓮 사진에 수용한 것이 이채였다. 바라만 보아도 청량감, 생명력을 풍겼다. 동절기를 맞은 연에서도 특이한 혼魂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진의 혼? 그랬다. 불심이 남다른 작가여서일까. 사진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밤을 기다려 내린 이슬 방울이 연잎에서 조르르 흘러내릴 것 만 같았다.

 

아름답다. 멋지다. 대단하다 식의 찬사는 끼어들 틈이 없는 나에게 갤러리의 모든 연은 새로운 세계였다. 연꽃으로 말하자면 전주 덕진공원, 경상도 양동 마을의 드넓은 연꽃 밭, 두물 머리의 수련을 답사한 바 있지만 오늘 만난 연은 내 영혼을 흔드는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일시에 가슴속이 탁 트이고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연은 그냥 사진이 아니었다. 연이 나에게 손짓하고 은밀한 비어秘語로 말을 걸고 있었다. 작가의 영혼에서 발현한 깊은 불심과 함께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의 내부에 환희의 문양을 빚어냈다. 이곳에 오기 전 이미 地風昇의 기분에 취했던가. 내 감수성은 본래의 생기를 소환하고 대추차 향훈을 음미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도량밖으로 나갔다. 오월의 신부新婦처럼 눈부신 햇살이 또한 환희였다. 코로나19 이후의 외출로는 단연 성공이었다.  북적대는 식당에 줄서 기다리다가 식사를 마친 다음, 줄장미 어우러진 샛골목의 찻집으로 갔다. 자주 인사동에 나오면서도 발견하지못한 한적한 시골 길의 오랜 샘터같은 찻집에 앉았다. 작은 공간에 부처님이 가득 모셔져? 있는 전통 찻집은 처음이었다.

보약 차에 이어 레몬향을 곁들인 오미자차 그리고 연잎차가 코스로 나왔다. 차맛이 개운하고 깔끔했다. 이지적이고 교양미 넘치는 나이든 찻집 주인의 보조개가 차맛을 더하게 했던가. 215일에 걸친 내 작업이 지루하고 힘들어 출타를 단행한 인사동의 하루는  모처럼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깊은 밤까지 평소에 그 인품을 눈여겨보던 이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앉은 채로 읽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맛깔 나게 참 잘썼다. 어떻게  이처럼 특출한 문장가가 나오는가.  문단에 나온지 불과 얼마의 세월에 이만한 성적표가 발생하다니! 저자에게 감탄하면서 읽기를 마치고 자정을 훨씬 넘기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문득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몸살끼에 몸이 고달퍼 아스피린 한 알을 먹었지만 모처럼 기분좋은 독서였고 유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