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불가
집에 돌아와 두 번째 외출 계획이 무산되었다. 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다.
오전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오후에 인사동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머리 자른지 몇 달인가. 너무 길어서 모자를 쓰고도 긴 머리가 목에 걸리적 거렸다.
"엄마! 머리 감았네? 오늘 어디 나가?"
딸이 눈치를 챈 듯 물어본다.
"음. 모처럼 귀한 분들하고 만나는 날이야."
"안 돼 엄마! 오미크론 그거 지금 유행하잖아. 못 나간다니까. 절대 안 돼!"
"마스크 쓰고 나갈 건데 안되긴 뭐가 안 돼?"
"지금은 아니야. 나가지 마! 만약에~."
"듣기 싫다! 왜 만약을 말하나? 기분나쁘게?"
기분이 언짢았지만 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는 곰곰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처리 하는 게 현명한가. 낮부터 날씨도 풀린다는데, 집에만 앉아 있을 수 있어? 오랜 만에 시내 나들이가 기분 전환도 될 것 같았다. 저지하는 세력이 가까운 데 있으니 번번이 행동에 부자유를 느낀다.
이런 날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제 종일 나는 '어머니꽃 하얀 무궁화'를 워드했다. 그 글을 쓸 당시와 지금의 환경이 다르므로, 수정도 했다. 큰 상을 탈만큼 근사해 보이던 글이 이제 보니 내 사고도 시시각각 변화무상하여 당연한 결과다. 어제 몰두했으니 오늘은 쉴 겸 밖에 나가고 싶었다.
이 무슨 일인가. 꼭 나에게 한정하여 설명한 건 아니라 해도 한 마디로 짜증나는 날이었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는 의미보다 나쁜 의미에 내 시선이 머문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것은 훨씬 내 기대에 목 미치는 불길한 방향으로 풀이되었다. 오전이 지나자 창밖의 햇살은 더욱 눈부셨다.
차라리 일을 하자. 생각을 돌리고 냉장고에 있는 더덕을 꺼내 물에 담그고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끈끈한 게 손에 달라붙어 성가셨다. 다음부터는 이 끈적거리는 더덕을 사오지 말자. 내 수고가 과하다.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들겨 지난 봄 내가 담근 막고추장에 파 마늘 참기름 참깨 고추가루 매실청으로 양념을 해 놓았다. 식욕이 없어 음식 만드는 것도 시들하지만 오늘은 궁여지책이었다.
밖에 나가면 다치거나 사고가 날 것 같은, 외출이 불가한 오늘 이 시간을 나는 슬기롭게 보내고 있다. 어쩔 수없이 내가 나를 다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