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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을 뚫고

능엄주 2022. 2. 4. 13:29

언 땅을 뜷고

 

 일상의 사소한 일 제쳐놓고 오로지 내가 읽어야 할 서책을 사들여 낮밤을 앉아 지낸다. 앉아 있기 심히 어려우면 일어나서 국민보건체조로 몸을 풀어본다. 바람은 꽃샘추위를 몰아오듯 맵차지만 창밖으로 바라보는 햇살은 틀림없는 봄이다. 따뜻하고 화사하다. 봄빛이 온누리에 퍼지면 화초와 잡초 가릴 것 없이 언 땅을 뜷고 지상에 싹을 틔우기 위해 안깐힘을 쓰는 계절이 아닌가. 어찌 풀나무 종류뿐이랴. 사람도 코로나 19로 인한 집콕에서 벗어나 봄빛을 즐기러 자연으로 나서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앖다.

 

책 읽기에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고 애를 썼는데도 슬슬 허리에 통증이 온다. 어깨와 목은 '그만 해' 하고 화를 내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짧은 글을 쓴다. 힘들어 질 때마다 이제까지 계속 해오던 일에서 잠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비록 짧은 글이라 해도 글을 쓸 때는 그 나름으로 머리를 쓰게 된다. 현재 붙들고 있는 굉장한 분의 저서, 그 어려운 책 읽기의 시름을 잠시 달래볼 수는 있다.

 

공부의 어려움을 피하는 한 방법으로 작문?을 한다.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무의미하다. 꿈이 있고 일이 있으므로 늙을 겨를도, 외로울 틈도 없는 것 아닌가. 대단한 결의가 그림자만 남아서는 안될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게으름은 용납할 수 없다. 시작은 어려워도 진행하다 보면 기쁨이 따르게 된다.   

 

돌아보면 섬에서의 100일은 뇌천대장의 시간이었다. 한 번 물리면 몇 달이고 가렵고 흉한 상처가 남는 모기 벌레와, 무고한 내 머리칼을 대량으로 빠지게 하는 음용수를 빼고도 순간순간 낯선 곳에서의 어려움은 계속 일어났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잠을 제대로 못자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먼길을 떠나와 분량을 해결 못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언 땅을 뜷고 새싹이 움트듯,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어렵게만 보이던 일들이 풀리고 스스로 자신감을 얻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것은 천산돈에서 뇌천대장으로의 진전이었으며 더하여 지풍승으로 나아가는 세력을 만나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다. 한 번 앉으면 장시간 잘 견디다가도 갑작스럽게 그 일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난다. 오늘은 기필코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24절기의 하나인 입춘立春이므로 조계사에 가면 은희 엄마도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매번 처음 생각이 옳았다. 아침 일찍 집밖으로 나갔더라면, 하루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을. 이런 무모한 사념이 또한 부끄럽다. 이 순간 뇌천대장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번뇌를 제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