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2021년 마지막 밤,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밤, 눈이 내린다. 일기예보가 모처럼 딱 맞아떨어진 날이었다.
야아! 눈이 온다 눈! 나는 반가워 소리쳤다. 어떤 손님이 그처럼 반가울까. 나는 이 눈은 필시 서설이라고 여겼다. 초저녁부터 내린 눈이 잠자러 방으로 들어갈 때 보니 꽤 많이 내린 듯, 아파트 단지의 모든 나무들은 성스러운 흰꽃이 피어나 유난히 아름다웠다. 잠을 자기에는 아까운 밤이었다. 설날 행사?를 떠올리자 눈 경치를 아쉬워하며 불을 껐다.
나에게는 돌아 갈 고향도 없고 반갑게 맞이해 줄 부모형제도 거의 세상을 떠났다. 나보다 훨씬 늦게 태어나고 나보다 훨씬 적게 인생을 산 동생들도 지난 3년에 걸쳐 세 명이나 세상을 하직했다. 집집의 장성한 손자녀들이 제사 소임을 맡아 주니 나는 단지 아들 네로 가서 설날 당직을 서는 아들을 대신하여 며느리 제사를 감당해야 한다.
다른 날에 비해서 늦게 잠에서 깼다. 새벽에도 눈이 내려 어젯밤보다 더욱 황홀하고 우아하게 온 세상을 덮고 있다. 아름다운 설경은 이를테면 서설瑞雪, 2022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를 축복해주는 조물주의 설 선물 같았다. 아들의 차를 타고 가면서 길은 빙판이지만 기분은 매우 고양되고 있었다. 순백으로 빛나는 눈경치에 찬사를 연발하며 아들 네 집에 도착, 아들은 나를 내려주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어찌 남자된 아들이 이처럼 제사 음식을 잘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 혼자서 시장 보아오고 매번 각종 전여와 산적과 어탕 등, 모든 것을 만들어 큰 채반에 일목요연하게 담아낸 솜씨에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반야심경 병풍을 펼치고 제사상을 진설했다. 그릇에 담는 것은 내가 맡았고, 딸은 제례 의식에 알맞게 제삿상에 배열했다. 대형 초 두 개를 촉대에 밝히고 향을 피웠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출석하지 못하는 동안 일상의 질서가 얼크러진 두 녀석을 제사상 앞으로 불러냈다. 여아 같으면 번다한 상차림을 도와 주었을까. 녀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거리며 세수를 한 후 제사상에 술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제사 의식은 진행되었다. 나는 일일이 한 장면 한 장면 사진을 찍어 먼저 녀석들의 아빠에게, 그리고 사돈 네에게 발송했다. 궁금해 하실까 염려해서였다. 10 여 년에 걸쳐서 며느리 제사를 보아왔기 때문에 별로 어려울 건 없었다. 다만 노도 섬에서 다친 팔이 많이 아파서 절절맸다. 집에 돌아와 정형외과 물리치료와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으나 오히려 더 아픈 것 같았다.
며느리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예외없이 슬픔에 젖는다. 제삿상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는 사춘기의 두 녀석들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제사 의식을 마치고 녀석들은 세배를 했다. 나는 그애들을 위해, 또한 지상을 떠난 그애들의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비록 유명은 달리했지만 녀석들의 장래를 위해서 어떤 힘이든 도움이 된다면 끌어오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밤부터 눈이 펑펑 쏟아졌고, 설날 새벽에도 서설은 지상의 모든 고단한 생명들을 위무하듯 곱게 내려 쌓여있지 않은가. 복되고 상서로운 설날이었다.
올봄에는 녀석들의 새 엄마가 출현하기를! 내 기도 속에는 마음 씀씀이가 넓고 후덕한 녀석들의 새엄마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희망은 임인년 설날을 빛내주는 서설 덕분일지도 혹 모른다. 청량한 기운이 넘치는 설경을 바라보며 나홀로 은밀한 꿈을 펼쳐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눈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의 싹이 고요히 움트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