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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유감

능엄주 2022. 1. 29. 12:35

설날 유감

 

 이를 아침부터 문자오는 소리! 그것은 2022년 임인년 설날을 맞이하여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방역중대본부의 문자였다. 설 연휴 기간 동안 정부의 방역지침에 잘 따라 달라는 내용으로 수시로 날아온다.

코로나19의 위험이 2년 이상 연장되므로 방역본부의 간곡한 당부가 시들해졌는가. 잘 해 봐야 일년에 한두 번인데 이번 설은 고향에 가서 연로한 부모님과 일가친척들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겠다는 사람들이 하도 많은 것인가. 모처럼 쉴 겸 TV 를 보는 나의 마음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고향 행렬이 부럽기 그지 없다.

 

고향이 있는 사람들, 고향에 그리운 얼굴과 추억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행복하고, 즐거워 보여 내 일처럼 흐뭇하기까지 하다. 그들의 귀향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선물을 고르면서 그들은 고향집에 다다르기도 전에 행복감을 느꼈을 것 같다.

 

 8~9년 전, 이맘때 즈음 나는 냉장고 청소를 시작으로 온 집안을 대청소하느라고 바빴다. 청소와 이불 빨래가 먼저였고 그 다음에는 마트, 수퍼, 재래시장을 차례로 돌며 먼 데서 오는 아들 네 가족이 선호함직한 식재료 구입을 중심으로 시장 보느라 분주했다. 두 녀석의 엄마는 내가 만들기 힘든 국에서부터 스스로 창작, 실습한 반찬 몇 가지를 싸들고 개선장군처럼 으스대며 룰루랄라 우리집으로 왔다. 딸은 제 올케와 조카들을 위해 성의껏 선물을 마련하고 그들을 기다렸다.

 

나는 아들 가족을 위해 내 방식대로 음식을 장만하면서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아들 네의 등장은 새로 편입한 두 손자 녀석과 함께 적어도 일년에 두세 차례 집안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그들의 연 사흘에 걸친 북새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읏샤, 읏샤, 신바람이 났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인가 하고 천진무구天眞無垢 감격감동했다.

 

"얘들아! 좀 더 있다 가지 그러니?"

 

친구들이 이르기를 결혼한 자녀들의 방문은  '오면 반갑고 가면 더욱 좋다' 고 하는데 적막강산에 파묻혀 작업, 수업하는 게 일상화된 나로서는 매번 섭섭한 작별이 되곤 했다. 두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나에게는 재치 있고 총명한 며느리와의 사흘 간의 동거가 못내 아쉬웠다. 이제는 세월이 제법 흘러 아쉬움도 미련도 대부분 희석되었지만 명절이 돌아오면 그때 그 시절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정부의 강력한 방역지침,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는 곡진한 지시사항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차량행렬은 이 시간에도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나는 두부전을 부쳐내다가 멍하니 TV 를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지금의 마음 같았으면 병원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바라볼 것이 아니었다. 산소 농도가 높은 편백나무 숲속으로, 지방 먼 곳에 안식처를 구해 며느리를 항암제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후회 막급이다.

 

그해 여름 방학 때였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오랜 동안 해오던, 익숙한 그 사람이 아니라 생판 저음 보는 사람이 검사를 했고, 며느리는 그 검사가 전에 비해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났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부터 물 한 모금 넘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위 내시경 검사를 생소한 사람에게 받지 않았더라면 기이한 참변?은 면했을 것을, 급속도로 악화되어 마침내 서른 여덟 어여쁜 생명이 세상을 뜬 사연!

담당 의사가 약도 복용할 필요가 없다, 그저 3개월에 한 번씩 점검만 받으러 오랬다며, 잘하면 복직도 가능하다면서 깡충깡충 뛰다시피 좋아하던 며느리의 발랄한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아~ 후회하면 뭘하나? 지나간 일인데, 마음만 아플 뿐인데!

그러면서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설날과 추석 명절에 나의 가슴앓이는 반복된다. 어찌 명절뿐이랴. 집안 곳곳에는 며느리의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며느리의 환영을 지우기 위해 더 치열하게, 적요한 골방을 찾아 집을 떠나 [고독한 성자] 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임인년 설날은 좀더 엄숙하게 차례를 지내야 하리라. 묵묵히 두  녀석을 보살펴 온 아들에게 슬픈 얼굴이나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은행계좌를 다시 개설했다고 자랑처럼 큰 소리치는 작은 녀석에게도 큰 녀석과 동일하게 세뱃돈을 준비해야 하리라. 그러나 가슴을 찢는 이 진득한 설움은 과연 무엇이냐? 며느리이 부재는 내 몸 죽어 땅에 묻히는 그날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