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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능엄주 2022. 1. 24. 10:16

나를 보고

 

요즘 머나 먼 남해의 작은 섬에서 돌아오자 갑자기 나를 보고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장도壯途를 축하드린다, 조용히 식사를 모시겠다, 존경스러워요, 무사했군요! 아무나 못해요, 대단하세요!"

 

내가 집을 떠나서 몇 달을 멀고 먼, 조선시대 최악의 유배지에서 지내다 온 것을 일러 주변에서 송구스러운 찬사를 풀어놓는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내 행방을 알리거나 계획을, 혹은 내 꿈을 발설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한두 사람이 내가 출타한 것을 뒤늦게 알았을 뿐, 내가 자청해서 나의 행동거지에 대헤 말한 일은 없다.

 

그러고 보면 과연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인가? 한 번도 밟아본 일이 없는 머나 먼 작은 섬에서 마치 톰소여의 모험이라도 겪고 온 것처럼 인정해도 좋은 것인가? 나 아닌 누구라도 견뎌낼 수 있는 평범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가족과 헤어져 나 홀로 친구네 집에서 열여덟살 고3 2학기를 보낸 일. 그때는 달밝은 밤에 뒤꼍 장독대로 나가서 도도히 흘러가는 무심천을 바라보며 서울로 간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에 젖어 지냈다. 최초로 혼자가 되어본 것은 초등 시절 섬머스쿨, 여름임간林間학교였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저 즐겁기만 했던가.

이번의 거사巨事는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온 일이므로 독거 100일이 전혀 심심하다거나 심한 외로움과는 무관했다.

 

나는 미리 정해진 계획에 기반해서 밥 지어먹으며 읽고 쓰는 일에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쓰는 일에만 치중하지도 않았다. 웬만큼 글의 윤곽이 잡혀 글의 흐름이 원활해지면 자칫 내 글에 내가 먼저 취해서 우愚를 범하는 일이 생길까 우려하여, 잠시 손을 놓고 한다하는 국내외 작가님들의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을 객관적 시각으로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저바다'가 보이는 책상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책상에 앉은 채로 밤을 맞이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배고픈 줄도, 밤이 오는지도, 외로운 처지에 놓인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코를 못 들 정도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어렵게 탈고 단계를 마치자 나는 그때서야 구운몽원이라든가 사씨남정기원, 그리움의 언덕이라는 노도 섬에서 가장 높은 전망이 좋은 정상까지 힘써 올라갔다. 제철을 맞아 검붉게 피어나는, 서포 선생의 피눈물과도 같은 동백꽃과 조우遭遇하는 행운을 누렸다. 호사와 행운은 그 며칠 뿐이었다. 더러 남해 읍내로 문학기행이라는 명분으로 출타를 했지만 거의 건성이었고, 내 마음은 여전히 책상에 머물렀다. 나는 100 여 일에 걸친 몰두와 몰입이 스스로 흡족하다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반복해서 대단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내가 할일을 한 것뿐이다. 누구라도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치 유배를 무탈하게 다녀온 사람처럼 나를 대하는 그들의 한가한 넉두리가 내 구미에 맞지 않는다. 나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해낼 각오가 되어있다. 그렇다. 최소한 건강만 허락하고. 좋은 글 창작을 위한 것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여긴다. 

 

아침밥을 먹다가 나는 그 '대단하세요! 에 얹힌 바 되어 식탁에서 곧바로 책상으로 옮겨 앉았다. 대단하다는 것은 나를 얕잡아보는 관점이 아닌가. 뭐가 대단해? 내가 시체야? 시체가 섬에 가서 살아 돌아왔어? 나 스스로의 평가에서는 내가 나의 인내심에 자긍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나를 보고 이른 아침부터 중언부언 '대단하세요!' 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로밖에 내가 대단하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그딴 찬사는 더 계속하지 말 일이다.

 

식탁을 정리하며 오늘은 근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볼까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불로콜리와 색색의 파프리카, 그리고 논산 딸기와 칠레 포도를 사와 색감 있고 대단할 것이 없는 나만의 점심상을  꾸며보면 어떨까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