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밤이 되면
책을 받았다. 모두 최근 수 천 만원의 유명한 문학상 상금을 받은, 대부분 남자 작가들의 책이었다. 늘 느끼는 것이 남자 작가들의 작품세계, 일상의 시야가 여성 작가에 비해 월등히 광범위하다는 사실이다. 직장을 다니며 경제적 안정을 누리면서 대작을 쓸 만큼 독자적인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는 데에 경의와 부러움을 표하고 싶었다.
입안이 텁텁하여 남해 금산 부소암 처사가 직접 찻잎을 덖어 제조했다는 녹차를 마셨다. 24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녹차 뿐 아니라 1호 시인에게 보리암 김장 김치도 가져다 주어 옆집인 우리까지 덤으로 얻어 먹은 일이 있다. 노도 섬에서는 김장김치 한 접시, 한 덩어리 호박이 귀물貴物이었다. 하얀 컵에 담긴 녹차는 푸르고 맑았다. 금산의 기암괴석처럼 신선하고 향기로웠다. 나는 거푸 더운 물을 부어 우려 마셨다.
녹차 때문인가. 아니면 모처럼 서울특별시에 나갔다 온 것이 심리적으로 흥분 상태인가. 잠을 자려고 애쓰다가 불을 켜고 독서대를 설치한 다음, 책을 읽기로 했다. 읽지 않고 쌓아둘 바에야 뭣 때문에 그 무거운 책 가방을 들고 만원 지하철에 흔들리며 집에 오겠는가.
이상하게도 수천 만원에 상응하는 상금을 수상한 작품이라 하면 그 작가에 대해서 평소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어디 한 번!'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초장부터 독자를 팍,팍, 견인하는 그런 문장은 아니었다. 너무나 침착하고 차분해서 졸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뭔가 뛰어난 점이 있을 거야! 기왕 펼쳤으니 잘 읽어보자' 큰 설레임에 비해 세 단락 쯤 읽었을 때 슬슬 줄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다.
잠결에 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창밖은 아직 해뜨기 직전으로 캄캄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았다. 7시였다. 일단 일어나서 기도 시작으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야 한다. 읽다가 둔 책이 그대로 독서대에 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왜일까? 호기심이 불같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은, 나는 느슨하고 완만하고 깐깐하게 연결되는 문장에 그다지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재미가 붙으면 눈 비비자 마자 그대로 주저앉아서 책을 끝까지 읽은 다음 냉수를 마셔도 마실 것이었다. 불같은 호기심? 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 작품을 쓴 그 작가의 장점이자 특징일 터였다.
새 아침이 활짝 밝았다. 아침해가 아파트 18층 높이를 넘어 지상에 고루 퍼지고 있다. 나는 좀더 사려 깊게 독서를 감당해야 하리라. 취향이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엔 내 저력이 부족한가. 가독력이 떨어지는 작품이어서인가. 아는 만큼 나온다는 실력에 무게를 두고 좀더 한가로운 시간에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언제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진행이 순조로운 것이 인기가 있고 그게 우선이다. 한 밤중에 책을 읽어서일까. 나는 다시 밤이 되면~ 하는 심정으로 주춤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