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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출

능엄주 2022. 1. 15. 15:23

첫 외출

 

여러 차례 숙고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병원에 가보기로.

날씨가 부옇게 흐려 앵강만 바다위에 수시로 짙은 물안개 덮이듯, 집에 와서도 왼팔 팔굼치가 아리고 쑤셔 마음이 무한 답답했다. 아픈 정도로 말하자면 콩콩 뛰어도 모자라지만 이런 날씨에는 따뜻하게 집에 들앉아 독서를 하든, 글을 쓰든지 하면서 잘 참아내야 한다고 자신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 집에 온지 5,6일이 되는데 아프다는 사실 외에 그 무엇도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끙끙 앓으며 지냈으므로.  

 

무작정 참고 있다보면 염증이 생겨 더욱 곤란해질까. 남해 병원에서도 인대 늘어난 것은 오래 걸린다고 했다. 왼손으로는 폰도 들수가 없다. 전화받는 것도 내가 처리하지 못하는 일로 치부될 지경이다. 토요일은 진료접수 마감이 12시 30분으로 알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뒤틀렸는지 자꾸 집에서도 넘어지려 하고, 왼팔은 전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도와 줄 형편이 아니다. 속이 탔다. 그리고 얄미웠다. 관용이고 삼재팔난이고 다 소용없다. 오로지 인간성이 문제다.

 

우리가 섬살이를 끝내고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올 당시, 선장은 사과나 양해를 구하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자기네 마을에 작품을 쓰러 온 손님. 외래객인 우리에게, 옆집 시인에게 삿대질하고 호령한, 나를 시멘트바닥에 엎어지게 방치한 장본인, 그가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말 한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병원에 가는 심사가 어찌 편안할 수 있는가. 남해에서도 몇 차례 배를 타고 나가 읍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바 있다.

처방 약이 너무 독하거나 내 증상에 맞지 않아 나는 전신 경련으로 연말에 잠을 거의 못잤다.  마침내 발끝부터 머리꼭지까지 쥐가 나고 입술이 부르꼈다. 나는 물을 끓여 소금을 타서 마시면서 이틀밤을 꼬박 새우다시피했다. 새해 첫날 노도 섬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임에도 나갈 수 없었다. 뿐 아니다. 연말로 소설쓰기를 마감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약화藥禍 증상, 경련은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 동안 더욱 심해진 것 같았다.

 

"이 일을 어쩌지? 병원에 다니면서 시간 낭비나 하고 있을 시기냐?"

 

열불이 활활 치솟았다. 어제 저녁나절 나는 딸이 거금?을 투자해 주문해 준 또 한권의 자료를 배송받았다. 이번에 받은 자료는 나에게 특별하다. 100일 기도를 멋지게 회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병원이라니.... 100여 일 만에 귀가해서 고작 병원문이나 두들기다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배를 3.4미터에 이르는 절벽에다 대 놓고 그 절벽을 기어오르라니 그게 말이 돼? 살다보면 그런 일도 겪을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다!

 

"넘어지신 것 혹 다친 데는 없습니까? 제가 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입이 얼어버렸나? 그 말이 무슨 자존심이야? 그 섬에서는 엎어지고 자빠지는일이 자주 일어나는가? 워드하는데 왼손이 거들지 않으면 글 한 줄도 못 쓰는 거 알만한 위인이 못 되는가? 집에 와서 고작 병원이나 가다니. 화가 치밀어 밥도 안 넘어간다. 병원가는 것보다 더 불쾌한 것은 그 사람의 고자세, 교만, 독선, 인성이다. 그 말 몇 마디 하는데 조상이 덧나나? 인격이 평가절하 되는가?

 

병원에 가서 아파서 절절매게 하는, 의심스러운 부위 또 X-RAY 하고 물리치료 받고 주사맞고 오면서 실소한다. 약은 정히 아플 때만 드시라고 한다. 차창으로 도시의 칙칙한 공기와 복잡한 거리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자연속에 살며 아름답지 못한 행실을 돌아볼 줄 모르는 그 무지를 나는 증오한다. 외지에서 온 우리를 뭐 취급하는 그 몽매함, 그 천박한 시각 수준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다.

 

더러운 기억 잊어버려라! 똑같은 인간 된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고 나 자신을 채찍질 한다. 아프다. 아프니까 기분 나쁘다. 저녁 밥 일찍 지어먹고 약 한 봉지 먹은 다음 몇 시간이나마 통증을 날리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 마음을 상하지 말자.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동료들과 길고 긴 통화! 며칠 후면 정답게 만날 동료작가들 얼굴을 떠올리며 행복하자. '먼 섬의 장도壯途를 무사히 마친 선생님께 축하드린다.  대접해 드리고 싶다' 는 젊은 작가의 말에 나는 울컥 했다.

 

불쾌한 일을 마음에 두는 건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집에 와서 첫 외출이 불러온 과거는 허공에 날려버리자. 읽을 책, 쓸 거리가 내게는 넘치고 넘친다. 동료들과 통화하면서 그야말로 열정의 피가 끓는다고 해야할까. 탱천(撑天)한다고 할까.

 

"나는 온전하고 완벽하며, 강하고 튼튼하거니와, 정답고 조화로우며 행복하다."

 

내 소설이 그렇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집에 와서 첫 외출은 결코 巽이 아니고 益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