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수히 설날을 겪어보아서 안다.
갑오년 설날처럼 힘든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것을.
설날을 기뻐하고 흥겨워 할만큼 내 나이가 젊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언제인가. 왜 이렇게 더딘가. 손가락을 꼽으며 고대하던 설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신문에는 예외없이 설날 스트레스를 받는, 주로 여자들에 관한 기사가 뜬다. 설 음식을 마련하느라 가사노동이 증가하는 데 따른 동서나 고부간의 갈등 같은 것, 흔히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이야기다.
잘 사는 막내동서가 늦게 나타나 봉투 내놓고 대접받는 이야기. 큰 동서는 허리 필 사이도 없이 이거 저거 해내느라 분주해도 방안 풍경은 그런 큰 며느리 사정에 둔감하다.
일이 많기도 하지만 더 큰 요인은 쌔 빠지게 일하는 맏동서의 고역을 이해해 주지 않는 시어른의 무신경, 어쩌면 고의적인 수수방관 내지는 얕봄도 함의돼 있을 법한 만행?이 저질러지는 세태라면 심한 말일까. 그런 정도는 나에게 숫제 관심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나는 설날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침울한 분위기를 몽땅 뒤집어 쓴 듯한 그 행사에서 제외되는 행운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며느리 제사상을 차려내고 내가 흘린 눈물은 하늘나라에 계신 나의 부모님이나 아실까.
나는 그 저녁 어쩔 수 없이 큰 아들에게 긴 메일을 보낼 생각을 했다. 큰아들 외에는 나의 상심을 토로할 곳이 없어 보였다. 만리타국에서 명절을 맞이한 큰아들은 나름대로 향수에 겨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큰아들 역시 그리운 건 고향이고 가족일 테니까.
나는 더 무엇을 구해야 하고 무엇을 더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회의와 의문이 엇갈리는 속에 묵묵히 제사상에 시선을 떨구었다. 며느리가 사진속에서 천연스레 웃고 있다. 손주녀석 둘이서 차례로 술잔을 올리고 넙죽넙죽 절을 하자 그들 아비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유약한 기질을 울었다.
설날 같은 거 앞으로 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마음이 그랬다.
설날이 다시 오더라도 슬프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었으면, 어릴때처럼 흰 천으로 된 커다란 윷판을 펼쳐놓고 친가 외가 다 모여 대청마루에 오동나무 윷가락을 힘껏 던질 수 있다면.
떡국을 먹는 둥 마는둥 손주녀석 2명을 데리고 H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애들아! 야구하자!"
딸이 먼저 공을 멀리 던지며 두 녀석에게 외쳤다.
"야아! 내가 받는다!"
3월에 초등학생이 되는 작은 녀석이 공을 잡으려고 높이 뛴다. 큰 녀석도 열심히 운동장을 달린다.
우리는 몇 시간이나 운동장에서 웃고 뛰었다.
"내일은 '겨울왕국' 보러 갈까? 롯데월드 갈까?'
딸은 두 녀석을 보고 자꾸 말을 건다.
아이들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신나는 표정이다.
나는 연속 사진을 찍었다.
햇볕이 무척 따스하게 느껴진다. 구름도 한가롭고 바람결도 순하다.
세월이 가면 잊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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