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두
짧은 글 쓰기를 중단하려고 한다. 관계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살펴보면서 한 권 한 권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관심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면 집중에 지장이 있을 거라고 여겼다. 기왕 결심한 일, 한 방향으로 매진해야 옳다. 환경정리하느라고 너무나 어수선한 2주일이 훌쩍 지나간 것, 내가 살 집이니 피할 수도 없었다. 핵심을 제쳐두고 고단한 일거리에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비 온 후 기온이 내려가서 오늘 새벽엔 발이 다 시렸다. 머지 않아 겨울이 닥친다는 예고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다짐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봄에서 여름 내내 병원 출입을 했던 게 거짓말처럼, 나는 이 섬에 와서 심신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특별히 식사에 신경쓴 것도 없고, 잘 챙겨 먹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긴장해서일까. 여튼 약봉지를 멀리 두어도 하등 불편이 없다.
살림살아본 경험이 없는 딸은 딴에는 내 생각을 한다고 했지만 보낸 물건을 보면 변변히 먹을 게 없다는 게 맞는 말이다. 이를테면 에쁜 꽃사과 - 내 C 여중 1학년 때, 생물과목 선생님이 정성껏 키운 꽃사과 나무에 기어 올라가, 익지도 않은 시퍼런 열매를 따먹던, 꽃이 사랑스럽고 열매도 귀여운, 그 꽃사과 2봉지. 열매가 앙증맞고 예쁘다고해서 값이 싸냐하면 그건 아니다.
또 주먹 만큼 큰 사과맛나는 대추 한 봉지, 깜찍한 미니 모나까 , 딸은 이 모나까는 다른 사람 주지 말고 이 섬에 새로 편입한, 처음보는 나에게 금방 딴 호박을 준, 고마운 경로당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한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알땅콩은 볶아놓은 호두가 있는데 왜 또 보냈는지, 거기다 잣까지.
에프킬라는 군청에서 주어서 한 병 여유가 있어 굳이 사지 말래도 또 한 병, 날씨 서늘해지면 모기 그놈들도 사람을 덜 괴롭힐 텐데. 이 무거운 걸 왜 보냈을까. 결명자차는 집에서 가져온 것만으로 충분한데 큰 거 한 봉지. 소금도 솔잎소금 갖고 왔는데, 이곳에서 김치를 담가먹을 것도 아닌데 웬 볶은 소금 한 봉지. 집에서 라면 한 젓갈 안 먹는 나에게 라면은 왜 그리 많이 보냈을까. 하얀 플래스틱 접시는 부모님 산소갈 때 사용하던 것 집에 많이 남았는데, 그 중에서 두 개 정도 보내면 될 것을 한묶음을. 아마도 이웃 집에도 나누어 주라는 것인가.
밥을 먹으려고 하면 먹고자시고 할 게 없다. 그래서 오늘은 먹이를 현지조달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거의 섬의 옥토, 토질이 상당히 양호해 보이는 밭에, 윤이 찰찰 흐르는 얼갈이 배추 말고도, 고추 가지 호박 오이 부추 쪽파 등, 산책길에서 그것들을 보면 그만 부러워 입맛을 다시게 된다. 장아찌 종류말고 신선하고 쌈빡한 채소 반찬이 내 밥상에 올라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의 입주를 도와준 분들에게 먼저 문자를 발송했다. 현지에서 싱싱한 야채를 살 수 있게 방법을 알려달라고. 입에 맞지 않는 라면을 먹다보니 김치 한조각이 절실하다는 말은 생략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집 김장김치는 중국산 배추가 되어서 양념만 버린 셈이다. 매년 단골로 주문한 곳인데 어떻게 중국배추를 보내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배추가 덜 절여진 줄 알고 까나리 액젓을 듬뿍 넣었더니 간이 지나치게 짤뿐 아니라 합판 조각 같은 게, 질기고 맛이 지지리도 없다. 식재료도 품질이 기본이다. 딸은 라면 끓일 때 함께 넣어 먹으면 된다고 버리지도 못하게 했다.
해질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금방 밭에서 따가지고 온, 가지 고추 호박이 담긴 함지박을 건네준다. 옆집이랑 나누어 먹으란다. 우리가 여기 입주하던 날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집까지 들여준 가장 고마운 분이었다. 적어도 석달 동안 이 섬의 주민이 된, 우리의 짐은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싱싱한 채소 사려는 뜻을 잘 밝힌 것인가. 궁하면 통한다고, 앞으로 며칠 동안은 풋고추만으로도 밥을 잘 먹을 것 같다.
"문원 선생님 덕분에 진수성찬을 먹게 되었네요!"
2호에서 카톡이 왔다. 그런가. 나는 찬밥에 더운 물을 붓고 밥 먹을 준비를 서둘렀다. 모처럼 입맛이 돌아오는 기미였다.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건강은 환경이고 정서라는 것을, 그리고 위장이 안정되어야 글 줄도 잘 풀리게 된다는 것을.
'먹는 거 대강 해두고 오직 몰두하라. 몽땅 투자하라. 몰두하는 곳에 희망이 있다.'
내 안에서 또 다른 '나'가 명령을 내린다. 이참저참 오늘 또 짧은 글을 올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