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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미혹 유혹

능엄주 2021. 10. 8. 20:10

현혹 미혹 유혹

 

제목에 사용한 위의 세 단어는 어쩌면 서로 동일한, 유사한 의미를 지녔을 거라고 믿어진다.  

국어사전에는 '현혹은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 미혹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것, 유혹은 꾀어서 마음을 현혹하거나 좋지 않은 길로 이끔'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음이 흐려지고, 정신을 못 차리는 구절은 서로 그 뜻이 유사하다. 유혹에 이르러서는 좋지 않은 길로 이끈다고 했다. 세 단어 중 유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흔히 남성이 여성을 꾀거나, 여성이 남성을 꾀어서 나쁜 길로 인도하는 양상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새벽부터 낮 3시까지 나에게 일어난 마음의 혼란에 위 세 단어 중 어떤 단어를 적용해야할까. 나는 어젯밤 결심? 한 바가 있다.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 한다는것. 게으르지 말자는 것, 우량한 자료가 모아지고 있으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말이 그말 같지만 나로서는 비장하다면 비장한 각오요, 일종의 혁신에 해당하는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현혹, 또는 미혹된 것인가. 그러나 흐려진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정신을 못 차릴 일도 없다. 실제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이고 경제력이며 사랑이다. 노도까지 오는데 다른 사람들도 돈을 많이 썼다고 했다.  그 '많이'라는 것은 계산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많이'라고 말하는 수위는 현재의 생활상태가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돈 0백 정도 써놓고 '많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문직을 가져본 일 없는 글 꾼들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보는 책에도 그런 내용이 소상하게 적혀있다. '최고의 성장과 완벽한 자기개발을 위해 1. 건강   2. 부  3. 사랑은 필수라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남편은 꽤 유식계급에 속한다. 아내의 저작생활에 필요한 건강과 주거, 저서 출판 조건을 갖추어 주려고 노력한 남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가장 긴요한 사랑이 결여된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그리고 500파운드를 설파했지 않은가. 결국은 오즈강에 빠져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집에서 지낼 때 나는 아구구구 노상 아픈 타령을 했고, 오른 어깨가 조금만 움직여도 빠질듯 몹시 아팠다. 마우스도 겨우 움직일 정도로 심각해서 정형외과, 내과, 신경외과, 한방에  다녔고 수개월 치료받았다. 결과는 별로였던가 싶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 와서 나에게 웬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새벽부터 먼 데를 가기 위해 동동거렸고 지하철, 비행기, 렌트 카, 그리고 배를 타고 와서 노도섬에 새로운 좌판을 펼쳤다. 오자마자 오래묵은 건축먼지와, 텅 비어 있던 집안에 기생하는 벌레, 모기와의 싸움을 한바탕 치뤘다.  오늘까지 만 열흘이 지나는 동안 나는 집에서보다 엄청 많이 몸을 움직였고, 손가락이 뒤틀리도록 마루걸레를 수십번 쥐어짜서 쭈구리고 앉아 침실과 거실, 주방 등을 쓸고 닦았을 뿐 아니라 욕실 타일을 북북 닦았다. 그냥 청소가 아니라 이건 이파트 입주할 때처럼  일괄적인 대청소, 건축먼지까지 몽땅 일차 입주생인 우리들 차지였다. 집에서는 전혀 하지 않은 청소운동이었다. 놀라운 일은 아구구구 타령을 늘어놓을 일이 없어진 점이다. 아픈 줄 모르는 것은 내 영혼이, 심신이 편안해졌다는 게 아닐까. 아니면 너무나도 긴장을 해서 아플 틈이 없거나.

 

공기가 깨끗해서? 서포 선생의 혼이 살아있는 섬이어서? 최초로 3개월씩이나 나만의 집을 소유해서 였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이건 획기적인 사건?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한 것도 아니다. 집에서도 별 게 없지만 이곳에 도착해서도 되는대로, 컵 라면에서 잡곡밥, 반찬도 부실한 식사였지 않은가. 그럼에도 아름다운 앵강만 주변 풍경에 감탄하면서 평화를 누린 때문인가. 그런데 오늘 새벽 나는 현혹, 미혹, 유혹에 딱! 걸렸다.  그것의 동기는 000만원이었다.

 

신청서가 미숙, 격식에 어긋나서 000의 거금?은 물 건너갔다. 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더 미련을 갖지 말라는 신호탄이다. 마감날 새벽에 서울 동료로부터 겨우 소식을 들었다. 허둥대다가 신청서 쓸 때 하자가 발생한 것, 내용을 제대로 숙지못한 탓이다. 그것은 정부에서 코로나19로 형편이 어려워진 문화예술인들에게  베푸는 것일지라도 내가 소유해서는 안되는 물질이라는 것일까.

 

"엄마! 잊어버려! 그딴 것 털어버려! 시도했다는 사실이 중요해!"

  - 얘는 뭘 알고 하는 소리냐? 그거 작성느라고 옆집 작가와 함께  하루가 허무하게 흘러갔다고.

"현혹되지 마. 그냥  경험한 거라고 생각하고. 더 미혹 되지는 마!"

 

 현혹이고 미혹이었던가. 유혹이 아니어서 다행인가. 나는 밤이 되어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엊그제 고친 세탁기에 세탁물을 넣은 다음 그제서야 노트 북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