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한 덩이
지난 봄 벚꽃이 온천지에 흐드러지게 필 무렵, 나는 이곳 노도에 현장답사를 다녀갔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자생식물을 연구하는 업을 가진, 식물학박사인 조카가 함께해서 씽씽 힘이 솟았던지. 구운몽원 사씨남정기원 그 정상까지 신명나게 올라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하동사거리에서 교통사고- 뒷차가 우리 차를 박치기- 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오래 고생한 것은 유감이었지만 노도 여행은 상당한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이번에 오면서 자세히 보고 느낀 점은, 여기 머무는 동안 언제라도 갈 수있는, 서포문학관, 허묘, 서포가 살던 초가집, 구운몽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심스럽고 엄숙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한두 번 다녀가는 것만으로는 그 길이 품고 있는 역사와 유래,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외와 숙고의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10월 1일 바야흐로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들었다. 단풍이 북쪽에서부터 출발하여 남하하는 계절, 그러나 이곳은 더위와 모기, 벌레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처음 오던 날 나와 딸, 딸의 친구까지, 세 사람이 땀 뻘 뻘 흘리며 신축 후 오래 비워 둔 집의 건축먼지와 묵은 때, 구석구석에 기생하던 모기와 각종 벌레무리를 대청소하고 모기약을 훔씬 뿌렸다.
모처럼 기회를 포착한 듯, 사람들에게 대거 달려드는 모기 떼를 못 참아, 딸은 급한 나머지 저 아래 가게에 내려가서 에프킬라 쓰던 걸 빌려왔다고 했다. 나중 새것을 사다드릴 생각으로 에프킬라를 듬뿍 살포, 그럭저럭 그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고, 3인의 역사적인 대청소로 실내가 정비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땀에 젖은 옷. 세탁기 사건?으로 사용도 못하고 사소한 일거리가 계속 발생, 본업에 충실은커녕, 아직 기본 끼니도 안정되지 못한 상태다. 집에서 가져온 것으로는 옛날 도시락을 면치 못하고, 식재료가 있어도 무엇을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나의 식사는 '굳세어라 금순이 시절' 수준이다.
약 뿌려 수다한 무리를 죽여도 방충망을 뚫고 단체로 침입한, 날개만 보이는 쬐끄만 것들이, 오래 전 태국 여행갔을 때 천정과 벽에 도마뱀 여러 마리가 붙어있던 훙물스런 모습처럼, 창문과 벽에 다다닥 무리지어 붙어있거나 기세좋게 날아 다닌다. 그것들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누가 뭐랄까. 잠자다가 깨서 '모물린'이라는 것을 물린 피부에 바르고, 약을 두세 번 뿌리고 모기향을 피우지만 하나마나다. 새벽에 보면 사방에 죽어 자빠진 모기 시체가 즐비하여 그것부터 처치하느라 분주하다. 경기도에도 날파리 종류 있지만, 이처럼 막무가내로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늘 아침엔 큰 맘 먹고 산책을 나섰다. 내가 이곳을 왜 왔는데 많은 시간을 모기 날파리따위에나 내 감수성을 소모할 수가 있단 말인가. 서포 문학관이나 김만중이 살던 초옥, 옛 무덤터, 구운몽원까지는 자신이 없어 보통 걸음으로 왕복 1시간 이내의 부둣가로 정했다. 노도 창작실을 나와 비탈길을 내려갔다. 길 오른 쪽은 동백나무숲이 울울한데 왼쪽은 가드레일이 설치되지 않아,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질까 아찔하다.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가게가 있고 그 아래 수백년의 나이테를 지녔을 느티나무 건너편에 노인놀이방 - 경로당이 보였다. 그 앞에 한 할머니가 서 있다가 나를 반긴다. 엊그제 입주식하던 날, 수풀속에서 헛개나무 가지를 잘라 고물 유모차에 넘치도록 싣고 우리 앞을 지나가던 허리 굽은 그 할머니였다.
"어디 가노? 예서 좀 놀다 가그라."
나는 발걸음을 멈추면 겨우 시도한 걷기운동이 무산될 것 같아 망설였다. 앉아 있는 게 주 업무인 나에게는 걷기는 필수였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서 있는 나에게 할머니가 경로당 툇마루에 놓여 있는 호박을 가리켰다.
"방금 밭에서 따온기라. 약 안 쳐서 볶아먹으면 맛있데이."
할머니는 남해 노도가 청정지역이라고 하면서 방안에서 비닐 봉지를 들고 오신다.
"달래도 한 줌 주까? 양념간장에 참기름 넣고 겉절이 해먹그러."
그냥 주시지 마세요! 저 주시려면 돈 받으세요.
"무신 소리 하노. 이런 거 주고 돈받아 본 일 내 핑생에 한 번도 없다. 나중 글 다 쓰고 갈 때 책이나 한 권 주고 가소."
나는 조금 무겁다싶은 호박 한 덩이와 달래가 든 검정 비닐 봉지를 떨쳐들고 부둣가를 한 바퀴 돌았다. 방파제 근처에 낚싯꾼 천막이 몇 개 펼쳐져 있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시골집 소박한 밥상처럼 정다웠다. 나는 노도 문학의 섬 상징조형물, 김만중의 문학정신을 상징하는 '서포의 책' 을 서포 선생을 마주하듯 한참동안 응시한다. 그 앞에 내가 앉았다. 갯강구라는 귀뚜라미도 닮고 바퀴벌레도 닮은, 꼬리 두개를 길게 흔들며 '서포의 책' 상징물 일대를 호위하듯 떼를 지어 기어다니고 있었다.
천만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과연 김만중을 잘 쓸 수 있을까, 워낙 큰 인물이어서 생각만해도 가슴이 마구 설레고 떨린다. 기왕 왔으니 서포의 문혼을 가슴에 새기며, 앵강만의 바다 에너지를 듬뿍 받아 좋은 글을 쓰고 가자고 굳게 다짐한다.
시집와서 딸 넷, 아들 한 명을 짝지워 대처로 내보내고 이날까지 노도에 사신다는 경로당 할머니의 호박 한 덩이가 새삼스레 나에게 끼친 각성이었을까. 이 아침 노도를 떠날 때 책 한 권 주고 가라는, 책을 알고 계시는 멋쟁이 노도 할머니의 그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나의 뇌리에 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