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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가을바람

능엄주 2021. 9. 18. 12:57

가을이라 가을 바람

 

위 제목은 가을 노래의 첫 소절이기도 하다.  누가 지은 노랫말인지는 모르지만, 계절이 가을이어서 가을바람이 불어 온다는 것인지, 가을이라는 청량한 계절을 찬미하는 것인지, 노랫말 그 뜻은 잘 몰라도, 어릴 때 입에 달고 다니던 노래 중 하나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왼쪽 눈밑에 경련이 일면서 오른쪽 머리로는 두통을 느꼈다. 근래 없던 일이라 곤혹스러웠다. 늘 하던대로 기도를 마친 나는 집밖으로 나가기로 맘 먹는다. 높푸른 가을 하늘이 유혹하기도 했지만 이 상태로 집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 안과 단지 밖 거리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씽씽 내달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연휴 첫날, 시장 보러가는 부녀자들이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카트를 끌고 6단지, 8단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조상 제사를 지내려고 추석 장을 보러 가는 행렬인가 싶었다. 그 행렬은 코로나19 이후 출입이 뜸했던, 아파트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모처럼 자신의 임무를 찾은듯이, 이웃할머니들과 함께 즐겁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었다.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인가? 명절을 맞이하여 온갖 것 다 장만하여 조상님들께 제사드리고, 가족이 모여 앉아 맛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데에 그 뜻이 있는 것일까. 민족 대명절, 팔월한가위라고 해봐야 갈 데도 올 데도 없는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분주한 거리 풍경을 주시했다.

 

오늘 따라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자주, 크게 들려왔다. 우리 동네에 대형병원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병원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겠지. 하긴 어제 서울 나갔을 때 보니 서울 거리에도 구급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수차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환절기에 급성 질환이 많이 발생해서인가. 아니면? 코로나 확진자 수송인가?

 

나는 별로 살 것도 없고, 실제로 식욕도 없는 터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 있는 곳엔 얼씬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가게 방향으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식료품 가게 건너편 돌 의자에 무작정 앉았다. 추석날 하필 당직을 서는 아들을 대신하여 며느리 제사 지내주는 일 말고, 그것도 아들이 시장보는 일부터 조리하는 것 모두 도맡아 해놓는다 하므로, 나는 생시의 며느리가 끔찍히 사랑하던 두 녀석을 독려하여 제사를 잘 지내고 뒷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왜 사는가? 가을 햇살 찬란한 아침에 내가 왜 여기 이 자리에 나타났는지 알수가 없었다. 나는 돌의자에서 일어나 14단지 근처 근린공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다른 날에 비해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고, 공원의 나무 그늘 벤치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거의 점거하고 있었다.

 

어제 서울 특별시 서대문구 소재 xx 한의원에서 전기침을 맞고와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편두통, 눈밑 경련이 발생한 이유를 알고 싶지만 그 한방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 의사는 내가 제기하는 증상이 모두 원기부족이거나 스트레스라 했다. 결국은 내가 중언부언 강조한 피부트러블, 집요한 등날개 통증, 어깨눌림, 제 증상이 원기 저하로 인한 것으로 단정, 핫팩과 전기기구 치료 후, 머리에 전기침을 여러 번 놓았다. 톡 톡 치는 전기침을 맞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침맞는 느낌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치료 분위기는 치료실 밖 사람들의 시끄러운 움직임 등으로 불안정했다. 의사는 치료만으로는 고칠 수 없다며 원활한 혈액순환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노상 앉아 지내는 생활습관을 개선하라고 충고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많은 할머니 군상들이 카트에 채소와 과일을 가득가득 눌러 싣고 부단히 내곁을 지나갔다. 나는 발걸음을 반대방향으로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근린 공원은 내게 빈자리 하나를 내어주지 않았다. 가을이라 가을 바람 부는 이른 아침, 나는 미아처럼 거리를 헤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