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때
취학 연령은 7살이었다.
3월에 생일이 지났으면 바로 입학이 가능했고, 나처럼 그해 3월에서 6개월이 모자라면 보결생이 되는 거였다. 윗 형제들이 줄줄이 그 학교를 다녀서인가. 나는 무난히 입학시험까지 치르고 국립사범부속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취학연령 미달이라 정식으로는 입학 불가였으나, 유치원에서 배운 게 유효했는지 입학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것 같았다. 대개 그 시절에는 취학연령을 초과, 나보다 두세 살 더 많은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몸이 허약한데다 입맛도 까다로웠다고 할까. 부모님은 내가 학교공부를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어머니는 나의 밥 먹는 모습을 보면 숟가락을 뺏어가지고 한 숟갈 크게 떠서 내 입에 넣어주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좋은 편이었고, 끼니마다 색다른 반찬이 올라왔다. 형제들은 경쟁하듯 맛나게 밥을 잘 먹었지만, 나는 어머니 말씀을 인용하면 늘 께작거린다고 했다. '께작'이 무슨 뜻인지. 국어대사전에 그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쨋든 나는 밥먹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 않은 게 분명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그 '께작'이 제삿날만은 적용되지 않았다. 제삿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몇 종류 올려져 있었다. 군침을 흘릴 만큼 입맛나는 것들이었다. 첫째는 조기찜 이었다. 아버지가 연평도에 자주 가시고 무슨 어장이라든가, 배를 가지고 있었던지, 아무튼 충청북도 내륙 지방에 살면서도 우리 가족은 조기, 굴비, 명란젓, 해삼을 자주 먹을 수 있었다. 제삿상에 올라온 조기찜이 가장 입맛을 돋우는, 내 구미에 100% 맞는 음식에 속했다. 어머니가 직접 생조기에 소금간을 해서 큰 항아리에 차곡차곡 재워 삭힌 것이었다. 짜면서도 고소하고 달작지근한 게 담백하고 맛이 괜찮았다.
제삿날이 돌아오면 나는 큰 기대를 가질 수가 있었다.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밥이 뜸들 즈음에, 순간적으로 솥두껑을 살짝 열고 소금간이 밴 조기 뚝배기를 집어넣어 쪄낸 그 맛은, 흰쌀밥의 향기마저 곁들여 가히 환상적인 맛을 연출했다. 다행인 것은 다른 형제들은 산적이나 전여같은 것을 선호하고 내가 좋아하는 조기찜은 누구도 거들떠 보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조기찜은 내 차지가 되었다. 조기찜 말고도 생밤과 식혜도 있다.
나는 제사상을 받는 조상이 몇 대 누구인지 모르는 채, 제삿날을 기다리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제사 지내는 방식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어쨋든 나는 어머니의 조기찜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처럼 입맛이 변덕을 부리는 환절기에는 더욱 나 어릴 때 제삿상에 올라 있던 조기찜 생각이 굴뚝같다고 할까. 유명한 요리전문가 누구누구의 갈비찜이고 무엇이고, 나 어릴 때 우리 어머니의 조기찜만은 절대 따라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집 딸은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사온다. 내가 기운 없네, 밥맛 없네, 노상 타령을 하니까 저도 걱정이 되는가. 그러나 그애가 사오는 것은 거의 단맛은 사카린이고, 느끼한 것은 조미료일 것이다. 식재료부터 가짜인데다가 양념도 엉터리가 대부분이라 먹을 수가 없다. 어쩌다 입에 맞는다고 하면 그것은 시장이 반찬일 경우이다.
"이딴 것 사오지 마!"
"나는 맛있는데 왜 그래?"
딸과 나는 시대가, 성장 환경이 다르다. 그애는 칭찬은커녕 돈쓰고 타박이나 듣는 게 짜증이 날 것이다.
내 어머니가 나의 입맛을 잘못 길들여서인가. 무엇이고 참맛이 났고 순수청정했던 게 탈인가. 초등 시절 아까시 꽃이고 산찔레 순, 괭이밥, 보리깜부기, 밀 알갱이, 삘기, 꿩밥, 논빼미에서 캐먹는 올미나 까치밥, 온갖 것을 다 먹고 다녀도 우리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지 않았던가. 가끔 횟배를 앓아 병원출입을 하기는 했으나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다고 본다.
나 어릴 때 먹던 음식, 나 어릴 때 뛰놀던 들판, 그때 그 친구들이 그리워 오늘은 초등 동창하고 카톡을 했다.
"얘, 코로나 이거 언제 끝나니? 우리 그냥 마스크 쓰고 만나자. 정자한테도 너가 연락해."
친구도 어쩌면 내 마음하고 같을까. 우리는 서로 그리워하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다. 오늘은 밤이 이슥하도록 유난히 그리움이 물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