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덕 껍질을 까면서
나는 기운이 남아 돌아서. 아니라면 가사노동이 즐거워서, 이도저도 아니라면 더덕 구이가 먹고 싶어서. 이 세 가지 항목이 다 맞을 수도 있고 다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더덕 껍질 까는 일이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왜냐하면 더덕은 품질이 양호할수록 찐이 많이 나와 손가락 사이에 척척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 찐? 진액이라할까. 그게 이를테면 몸에 유익하다는 물질 아니겠는가.
나는 늘 책상에 붙어 앉아서 생활을 한다. 읽고 쓸게 너무나 많아서 즐거운 비명을 질러도 무방할 만큼, 컴튜터는 나에게 거대한 학숩장이다. 꼭 읽어야 할 좋은 글들이 많다. 물론 좋은 글을 가려볼 수 있는 시각도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세상에서 글 잘 쓰는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고, 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글이 좋아서 무한정 앉아 있다보면 몸이 막 시위를 한다. 쉬어달라고, 힘 들으니 집밖으로 나가달라고, 그만 좀 쓰고 읽으라고, 내일이 또 있다고.
그래서 손가방을 둘러메고 허름한 점퍼 하나 걸치고 무작정 거리로 나간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먹이 사냥이 되는 꼴새다. 조금만 걸어나가도 과일 야채 생선 고기 무엇이건 없는 것이 없다. 우리 동네는 물건 사기가 지극히 편리한 곳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는대로, 지갑에 돈 들어있는 것만큼, 사다 보면 들고오기가 힘들 정도다. 물가가 비싸다 해도 야채와 과일은 웬만큼 사도 한 짐이 된다. 오늘은 더덕과 연근도 샀다. 흙묻은 그대로를 사와서 내손으로 껍질을 까야 더 맛이 좋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오전은 죽자사자 원고 pdf 교정 제 3차를 보았다. 오후에는 더덕과 연근을 정리해야 했다. 만만치 않은 일이란 걸 모르고 사온 것이 아니니 미리 각오가 돼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도 힘들었다. 시간 많이 소모되고 어깨가 아팠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더덕 구이를 유난히 좋아하던 며느리 생각이었다. 추석에 아들네 가족이 올때는 나는 산더덕, 우리나라 토종 더덕, 조그맣고 아삭아삭 식감이 뛰어난 산더덕을 사러 으례 불광동 시장까지 진출한다. 며느리를 위해서였다. 모처럼 시댁에 와서 무엇 한 가지라도 입맛이 나면 오죽 다행한 일인가.
어머님! 맛 있어요! 옆에서 보는 사람이 침이 넘어갈 정도로 며느리는 내가 불광시장에서 사온 토종 산더덕 구이를 잘 먹었다. 더덕의 결대로 쭉쭉 손으로 찢어 아이들도 먹여주고, 저도 먹는 모습이 어찌나 복스럽고 소담한지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추석이라고 이것 저것 간볼 게 많은데도 며느리는 산더덕 구이를 왜 그리 좋아했을까. 어린 시절 우리집 마당에 심어진 더덕 나무 넝쿨이 지붕으로 마구 뻗쳐 올라갔다. 더덕꽃은 또 얼마나 귀족스럽고 고상하던지. 그냥 꽃이라기엔 청사초롱같이 생긴 모양이며, 꽃 색깔은 그 흔한 노랑이나 빨강이 아니어서 엄숙한 일면도 있었다.
묵묵히 더덕 껍질을 까면서 가고 없는 손자애들 엄마를 그리워한다. 며늘아이 간지 만 8년이 흐른 지금, 살이 있으면 이제 마흔 중반이다. 3주 후에 맞이하게 될 추석명절이 우리 가족에겐 슬픈 명사名辭에 다름 아니다. 오늘 저녁 더덕 껍질을 까면서, 추석 절기에 맞는 송편과 토란국보다 더덕구이를 더 즐겨 먹던 며느리 생각! 괜스레 더덕을 사가지고 와서 기껏 슬픔이나 소환하다니! 더덕 껍질을 까는 시간 내내 나는 슬픔과 함께 한 것 같다.
나는 서둘러 더덕까기를 마무리짓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앞으로 더덕은 가능하면 사지도 먹지도 말자. 불광 시장에도 나가지 말자. 나는 굳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