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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다의 갈매기처럼

능엄주 2021. 8. 26. 18:22

남해 바다의 갈매기처럼

 

어제 오늘 이틀을 연속해서 나는 원고 교정을 보았다.

Pdf는 책 만들기 직전 웬만큼 교정이 완료되는 때에 보는 것이지만, 출판사에서 보내온 Pdf 원고가 오늘은 고칠 게 왜 그리 많은가. 어제 6꼭지를 보았고, 오늘 3꼭지를 보는데 진땀이 온몸으로 척척하게 흘러서 얼굴에 땀띠가 따끔거렸다. 창밖에 바람결도 제법 강했으나 일이 힘들어 흘리는 땀 같았다. 남 보기에는 책상에 앉아서 편안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막대한 정신적 육체적 중노동이다. 후딱하면 세수도 밥먹기도 생략하니 이런 날은 일상이 뒤죽박죽 뒤틀린다.

 

큰 오라버니를 따라 처음 서울 왔을 때, 나를 서울로 불러올리기 위해 큰언니가 무슨 정당 사무실인지, 큰 기업체에 취직이 결정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는 우리학교 카운셀라 담당 교사에게 부탁하면 은행이든 우체국이든 초등 교사든 얼마든지 갈수 있는 성적. 여건이 되어있었다. 굳이 서울로 와서 촌뜨기 노릇하면서 을지로 종로 충무로 등, 길을 몰라 절절매지 않아도 좋았다.

 

얼마 지나자 앞집에 사는 S 대 교수 사모님이 내가 안 돼 보였는지 나를 자기집으로 불렀다. 그댁의 초등 2학년 남자 아이 가정교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나는 가정교사가 뭔지 구체적으로 몰랐다. 내가 태어나 성장한 청주시에서는 가정교사란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긴 운동선수였던 큰 오라버니에게 큰 언니가 가정교사를 붙여주었는데도 나는 사랑방 일은 철저히 무관심했다. 한 지붕아래 살아도 그 가정교사 얼굴을 한 번인가 본 것뿐이었다. 가정교사가 입주하자 오히려 큰 오라버니를 비롯한 사랑방 남학생(큰오라버니 후배)들은 더 신나게 놀고, 더 시끄러운 것 같았다.

 

초등 2학년의 가정교사는 선생님 입장보다는 그애의 누나 개념이었다. 그애는 친 엄마가 아니었고, 나를 데려간 사모님은 그애의 계모였다. 나는 그애와 공부도 같이 하고 그림도 함께 그렸다. 그애는 나를 잘 따라주었다. 그런 와중에 그애 아빠가 나에게 힘에 부치는 일감을 맡겼다. 검인정 교과서 집필, 윤문, 교정이었다. 교수 역할은 내가 당시에 보건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여유롭게 보였다. 그애 아빠는 안락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원고룰 입으로 불러주었다. 나는 원고지에 받아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읽기 좋게 윤문 윤색, 교정, 수정을 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원고 교정이란 것을 접한 것이다.

 

하루 200자 원고지 100매를 받아 쓰는 자체만으로는 힘들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나는 남의 집에 거주하는 게 점점 불편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원고 교정부호도 그때 최초로 익혔고, 처음에는 생소했으나 이내 익숙해졌다. 교수님이 책을 발간할 때는 서대문에 있는 인쇄소에 가서 졸린 눈을 비비며 밤을 지새우고 교정도 보았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등록금이 해결되었다.

 

그 일이 이제까지 연결되어 온 셈이고, 부실한대로 내 삶을 지탱해주는 방편이 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전적으로 내가 원해서 하는 창작작업이라해도 마냥 좋은 것으로만 인정하기에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따랐다.  나의 다른 꿈은 그 한 가지 일에 무수히 잠식되어갔다. 다른 일에 코를 쳐들수가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 없이 가정에 민주화 없다는 말처럼, 내가 퍼부은 세월과 노력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었다. 요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인 가치가 글쓰는 업무에 걸림돌이 되곤 했다.

 

손익계산서를 쓸 수 없는 중노동은 이번까지다. 내 결심이었다. 창작작업에 대해 모두 입만 열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일은 솔직히 까다롭고 복잡하다. 글쓰기 글 읽기가 취미에 머물지 못하고 업이 되면 그건 사슬이다. 지옥이 된다. 오죽하면 토니어 크뢰거가  '문학은 천직이 아니고 저주'라고 했을까.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보상과 대가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다른 일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글쓰기의 생리상 하 오래 한 곳에 얽매어 있었다는 자책이 새롭다.

우리나라 최남단 남해를 끝으로 내 장편 소설 유종의 미를 거둔 다음, 나는 훨훨, 푸른 창공으로 날아가리라. 남해바다의 갈매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