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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이렇게 아파?

능엄주 2021. 8. 19. 21:26

나 왜 이렇게 아파?

 

요즘 몇 달에 걸쳐서 나는 제대로 일을 잡은 게 없다. 일이 손에, 마음에, 잡히지 않았다.

이 여름, 얼굴을 벌러지가 파먹어 레이저 수술을 하지 않았나, 마취를 해서 아픈지 어쩐지 잘 모르고 지나갔지만 삼복 염천에 답답했다. 이제야 딱지가 떨어지고 부풀어오른 부분이 평평하게 갈앉았지만 벌겋게 흉터가 남아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뜹뜰하고 석연치 않은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결과니까. 

 

이 책 저 책 들춰보다가 읽혀지는 책이 있으면 앉은 상태로 끝장을 본다. 그럴 때는 아프다는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집중하니까. 그런데 나는 무지 아프다. 어깨부위, 등줄기. 그리고 목 언저리가 인정사정없이 아프다. 그동안 여러 병원 다녀본 경험으로 물리치료 제일 잘하는 병원은 우리집에서 멀다. 종점까지 지하철로 가서 시외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멀기도 하지만 더 이상 환자 하기가 지겹다. 창피하다. 아픈 사람이 무슨 창피고 체면이고 따지느냐 하겠지만 아파도 정신상태는 맑게 살아 있다.

 

본래 노는 일에 문외한이라 내가 쉰다고 해보아야 고작 절마당 밟는 일, 절마당에서 친구 만나 인사동 뒷 골목으로 코다리조림 사먹으러 가는 일 빼면, 다른 놀이가 전무한 형편이다. 병원도 창피해서 못 가고, 놀기도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는지 모르니 이 여름 아픈 일만이 내 전신을 쪼은다.

 

소설가 동료가 보내준 순무김치, 브로콜리, 쪽파, 호박잎, 닭고은 국으로 저녁밥을 먹다가 바로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등줄기가 아파서 숟가락 들기도 버거웠다. 밥맛도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도대체 나 왜 이렇게 아파야 해? 나 무슨 잘못 했어? 송도 산 꼭대기에 살 때 임산부가 산 저 아래로 두레박 물 길으러 다녀서, 벌써 그때 몸이 고장난 것인가. 수술도 치료도 어지간히 한 것 같은데 나는 아프다.

 

요 며칠 사이 4Kg 이상 체중이 줄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먹을 수도 없다. 잇몸병이 도져서 어제 오후 치과에 다녀온 후로, 더욱 살맛이 증발하고 있다.  한 번 먹으면 체외로 배출도 되지 않는다는 항생제를 끼니마다 먹어도 아픈 부위는 좀체로 줄어들지 않는다. 대체  왜 이렇게 아프면서 살아야 해? 언제까지 이렇게 울부짖어야 해? 전생에 내가 거부장자였다는 말 믿어도 돼? 돈 모으느라고 어려운 사람들 돌보지 않았던가.

 

자유로운 영혼인 우리집 딸은 내 고통의 100/1도 헤아리지 못한다. 코로나19에도 갈 곳이 부지기수, 밤마다 마스크를 쓰고 서울특별시의 서촌, 북촌, 원서동, 익선동 한옥마을을 누비고 다닌다. 그 동네에 살고 싶다고 한다. 어제는 내가 사오라는 책 3권을 사오는 인심을 썼고, 내 얼굴의 상처를 처음으로 들여다 보는 아량?을 베풀었다. 벌레물어 부시럼처럼 부풀어 오른 내 얼굴에 무관심, 스마트 폰만 있으면 그애는 만사 휴의였다.

 

요즘 동생 타계 후, 밤 12시에 실행하는 지장경 기도가 나에게 과했던가. 졸리운 걸 억지로 참은 게 건강을 좀 먹었나?  나는 기력을 차릴 수가 없다. 기도 끝나도 정신이 똘방똘방해서 겨우 2,3시나 되어야 다시 잠들곤 한 것이 수면부족으로 이어진 것인가. 오늘의 주역괘는 택수곤괘(澤水困卦)였다. 현재의 내 정상(情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대난괘(四大難卦)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도 없다. (象曰 澤无水 困 君子以 致命遂志) - 연못에 물이 없어 곤궁하지만 군자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쳐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비장하지만, 몸을 사리고 겁을 내고 주저앉기 보다 현명한 처사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다른 형제에 비해 많이 아파서, 오죽하면 부산 사는 김사장님에게 수양딸로 보내려고 했을까. 남의 부모를 섬겨야 명을 잇는다면서 어머니가 적극 밀었다는데,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말렸다는 것 아닌가. 차라리 나는 친구집에서 보낸 고3 그 시절이 인생 황금기였다고 믿는다. 친구집이라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을 만큼 나는 건강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작년 가을 토지문화관 갈 때도, 나는 겨우겨우 집을 나섰지 않은가. 그곳 추운 방에서 두달 여를 찬물로 목욕하며 씩씩하게 잘 지냈다. 그런데 아! 나 왜 이렇게 아파? 무슨 죄야? 건강을 지키지 못한 죄?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 부는데 집을 떠나보면 건강해질까? 등줄기가 너무 아파서 빠지는것 같다. 그런데도 의사, 병원마다 내가 건강하다고 말한다. 무슨 운동을 하시느냐고? 어쩌면 당뇨도 고혈압도 없느냐고? 고혈압 당뇨가 누구나 지니고 살아야 할 병증인가. 어느 부위에다 침, 또는 주사를 놓고, 어느 부위를 치료했는지 하나도 나은 곳이 없거늘, 그 눈들이 한심한지고!

 

방에 들어가 고요히 책을 읽도록 하자. 읽고 쓰는 것만이 구원이다. 오로지 자주국방이다. 택수곤괘로 기 죽지 말고 분발하자. 나는 내 아버지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