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어!
노상 집에 있다 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와 수상한 문자가 많이 온다. 생소한 번호는 즉시 삭제한다. 근래 코로나19 확진자 못지않게 사기꾼, 교활 악랄한 보이스 피싱, 단돈 5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유도하는 사이비 금융종사자, 주택의 현재 가격과 거의 동일한 금액을 싼 이자로 대출을 해준다면서, 은행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번호만 입력하는 교묘한 수법 등, 각양 각색의 범죄 행위가 활개를 치고 있다.
그뿐인가.
"물고 늘어진다고요! 될 수 있으면 병원에 가지 마세요!"
수개월에 걸쳐서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받았다는 게 오히려 더 건강을 다운시키고,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기가 차다. 일찍이 비리를 겪어본 사람들의 충고를 무시한 결과다. 왜 무슨 증상으로 3시간여 기다린 환자에게 주사를 열군 데나 놓는지 물어 볼 엄두도 못냈다. 그런 류의 주사는 태어나 처음 맞아본다. 이타 저타 설명 한 마디 없이, 30.40분에 걸쳐서 주사기에 약품을 주입하여 주사를 놓아주는 의사에게 나는 외경과 신뢰를 품었다. 그는 환자 얼굴만 보아도 어느 부위에 병소가 깃들어 있는지 빠삭하게 헤아린다고 믿은 것이다. 지인에게 그렇게 듣고 이 병원에 온 것이었다.
나는 지인이 소개해준 병원에 감읍感泣하여 다녔다. 이제야 명의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오고가는 시간만 3,4시간 정도 소요되었고, 병원에 갈때마다 어디를 어떻게 얼마동안 치료할 것인가를 묻지도 않았다. 지인의 말을 백프로 믿고 충실히 치료에 임했다. 첫날은 주사맞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다가 내려 놓은것처럼 신기했다. 기적이었다. 듣던대로 용한 의사가 맞구나. 나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르면 몰라도 진통제 종류를 주사해서 일시적으로 통증에서 해소되도록 처치한 것이 아닐까 의심되었다.
또다시 막중한 시간과 재정적 손실을 입은 것에 다름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프지 않던 부위까지 통증이 가중된 것이다. 몸을 똑바로 펼 수가 없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통증이 막무가내로 전신을 압박했다. 얼굴을 펼수도,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럴 때 일부러 더 일거리를 찾아내 일에 열중하도록 나 자신을 독려했다.
병원에 두 번째 다녀온 날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통증이 완화되거나 치료되었다는 어떤 느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구석구석 철저하게 아팠다. 주사만 열군 데 놓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간호사도 기분나쁘지만 요는 치료 효과였다. 하다못해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와도 이보다는 나았다.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아파 절둑거리고 갔다가 불과 몇 천원에 해당하는 일반 침을 맞고나면, 돌아올때는 훨씬 양호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 주사 최소 3번은 꼭 맞아야 해요! 얼른 가서 치료받으세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그 병원을 소개한 지인이 채근했다. 그러나였다. 가기 싫어하는 내 생각이 옳았다. 보험 적용도 안되는 거액?의 치료비를 내고 오면서 병주고 약주는, 아니 병주고 병주는,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구심이 점점 심해졌다.
오늘은 아예 가지 않기로 결심하고 통증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다. 차라리 마음이 갈아앉았다. 웃옷을 거의 까 올린 불편한 자세로 30분~40분을 견디기 보다 열백번 평안을 누렸다. 나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 당분간 병과 함께 동행,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스려보기로 다짐한다.
또 속았어! 얼마전 대형 병원에서 당한 일이 떠올라 어떤 병원이든 더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 처방해준 약은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을 호전시키는 게 아니라 정반대였다. 남해에 함께 간 조카가 약은 아예 먹지 말고 버리라고 말했다. 부작용이 수백 가지가 넘고, 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질질 흘리고 다니면서, 방향감각 마비와 어지러움증을 유발하는, 치매 촉진제,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는, 노약자에게 처방해서는 안되는 극약이었다. 조카의 말도 있고 해서 재빨리 진료 예약을 취소, 포기한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만약에 그 약을 계속 복용했더라면 아마도 나는 급속히 중증 치매환자로 둔갑하여 그 병원에 적지 않은 장례식 비용까지 벌어주고 이미 하늘나라로 갔을지도 모른다. 고혈압도 없고 당뇨도 없는 내 일상은 내 방식대로 규칙적이고 정상이었다. 나는 보통의 피로감 외에는 몇 날 몇 달을 소설을 써낼 만큼 건강했다.
환자를 봉으로, 호구로? 아는, 리베이트인지 뭔지, 돈에 미친, 의료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보다 훨씬 건강한 이웃 엄마가 위장병이라며 약을 한달치씩 몇 차례 받아와 복용하던 중, 치매 환자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양시설에 가 있는 것, 나의 혈육같은 선배님은 난데 없이 폐암이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 진단을 받고 두달 만에 저세상으로 갔지 않은가.
뒤따라오던 화물차가 우리 차를 박치기하는 바람에 조수석에 앉았다가 목과 어깨, 등날개에 충격을 받은 것. 그날 나는 어쩐지 뒷 자리에 앉고 싶었다. 내 예감대로 했으면 차가 박치기 당할 때 납작 엎드리면 다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남해 현장답사 이후 졸지에 환자로 추락, 방황하며 울부짖던 그동안의 나 자신을 이제 통렬히 돌아보아야 한다.
'치료 약은 모두가 독이며 따라서 먹을 때마다 활력을 떨어뜨린다. 자연에 맡기면 저절로 회복할 것으로 보이는 환자들을 서둘러 묘지로 보낸다.' - 뉴욕 의과대학 알론조. 클라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