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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렵게

능엄주 2021. 7. 29. 13:34

세상을 어렵게

 

나는 세상을 어렵게 살고 있는가. 이렇게 운을 떼놓고 보면, 세상을 쉽게 사는 사람 누가 있어? 하고 질문할 사람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미련스럽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얼굴 오른 쪽 볼을 족보미상의 벌레가 물어서, 일년을 두고 가렵고 진물나고 쓰라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원과 약을 싫어해도 분수가 있지.  '근지럽고 따겁고 피나고, 물 들어가면 억수로 쓰라리고' 를 참다니, 제 정신이야? 약사가 추천해주는대로 유명 제약의 연고를 여러 개 사다가 도포해도 아무런 효험이 없거든, 바로 병원을 찾아갔어야지. 어쩌자고 펄펄 끓는 삼복 염천에 병원엘 가느냐고. 참을 걸 참아야지. 얼굴이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렸을 때 우리동네 아이들, 또 우리 형제들도 몸에 부스럼이 많이 난 것 같다. 한 번은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시면서 약품 여러 종류를 사오셨고, 우리 형제들이 그 약을 몸에 바르고 부스럼을 고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얼굴이나 몸 어디에도 부스럼 따위 생기지 않았다. 나만 멀쩡했다. 소녀시절에도 그 흔한 여드름, 뽀루지 한 번 나 본 일이 없어, C시의 미인으로 소문났던 내 언니가 내 피부를 부러워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해서인가. 아니면 내 신체, 피부가 면역력이 약해져서인가.

 

예약시간 안에 정확하게 백 병원 피부과에 도착했다. 한 여름에 웬 피부과 환자가 이렇게 많은가. 나는 놀랬다. 지팡이를 짚고 온 남자 노인부터 예쁜 주부, 중년의 남자, 어린 소녀들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진료실 안 과 밖 의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마 후 내 순서가 돌아와 의사 앞에 앉으니 몇 마디 질문을 한 후, 레이저 검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덧나 있고 충혈된 현재 상태에서 어떤 부류의 충(蟲)이 물어뜯었는지, 연한 피부를 뚫고 들어가 알을 까고 사는지, 개체수를 늘렸는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찔, 아득, 벙벙했다. 무서워요? 라고 내가 물었다.

"아뇨! 마취를 하니까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요. 다만 피가 좀 흐를 것이고요, 마취가 깨면 쑤실 건데요. 항생제를 못 드신다니 그냥 이렇게 얼굴에 붙여드릴 거예요."

아마도 반창고 뭐 그런 것인가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병원도 대형병원이면서 원무과 공간이 협소하고 소란스럽기는 전에 다니던 은평 병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용한 데가 없었다. 이렇게 환자가 많단 말인가. 내 눈에는 나를 비롯하여 환자 모두가 제 몸 간수를 제대로 못한 낙후자(落後者)로 보였다. 몸 뿐이냐. 그들의 인생도 허점 투성일 것 같았다. 뭔가가 많이 결핍되고 미흡한 백성들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여겼다.

 

접수하는 간호사가 친절하게 일러준 곳, 레이저 치료실로 옮겨 갔다. 높은 치료대에 신발 벗고 올라가는데 착잡, 억울, 분했다. 어쩌자고 나를 물어 뜯어? 대체 어떤 놈이야? 긁지도 않았는데 이만큼 눈에 보이도록 상처가 흉해진 데는 내 책임이 더 컸다. 벌레 그놈도 나쁜 놈이지만. 더 고약하고 아둔한 것은 나였다. 얼굴을 예리한 침으로 두어번 찌르는 것은 마취제를 놓는 것인가. 그러고 난 다음에는 계속 내 볼을 꾹꾹 누르면서 지혈을 하는 것인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의사가 "끝났습니다. 일어나 나가시면 됩니다." 했다.

 

나 젊은 날, 검사용으로 채혈을 11cc 만 해도 바로 어지럽더니, 치료대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핑글! 내 몸이 한 번 내둘렸다. 기분이 칙칙했다. 맨날 환자 노릇이냐?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소리를 지른 것 같았다. 수납에 가서 번호표 뽑고 기다려 결재한 다음, 병원을 나와 땡볕을 걸어갔다. 아! 한심하다. 고작 병원나들이? 기껏 한다는 게 병원에 돈벌어 주는 일? 터덜터덜 지하철역을 향해 걸으면서 자조를 흘린다.

 

왜 이렇게 둔하게 세상을 살고 있는가. 날때부터 나는 둔자(鈍者)였는가. 인생 결산서를 쓰려 해도 건더기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