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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종점

능엄주 2021. 7. 19. 20:36

마포 종점

 

5호선 공덕역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맹렬한 기세였다. 내 가방에 준비한 작은 양산은 겨우 머리칼을 젖지 않게 하는 역할 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야말로 억수로 퍼붓는 폭우였다. 어디 잠시 피할 곳이 있을까 하고 빗속을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으나 가도 가도 아파트 단지만 나타났다. 한 아주머니가 발걸음을 멈추고 어떤 건물을 가리켰다.  눈을 들어 보니 걷고 있는 지점의 반대편에 마포문화원이 보였다.

  '마포문화원 저기가 끝인데요! 주민센터는 여기 없는것 같아요'

폭우 속에서 길을 묻는 나를 지나칠 수 없었던가. 그분의 친절이 비에 젖은 내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와아! 대단한 변화이고 발전이다! 이렇게 멋지게 변하다니!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가야할 곳을 못 찾아 초조하기보다는 너무나도 서울스럽게, 완벽한 신흥도시로 변한 마포를 보면서 옛 생각이 빗물처럼 가슴에 고여왔다. 그랬어! 저기 저 지점이 아마도 마포 버스종점이었을 거야! 주성이네 한옥이 있던 그 골목, 어쩌면 그 반대편 복성이네 집이 있던 야트막한 언덕쯤에 형성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나는 잠시잠깐 추억에 젖었다.

 

국어국문과에 입학했을 때부터 우리는 셋넷씩 짝을 지어서 학교 행사나 강의실 이동할 때 잘 어울렸다. 일찍 학교에 오면 시간이 널널해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명륜관으로 가거나, 혹은 잔디밭에 엎드려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남학생들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한껏 폼을 잡고 자작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다. 참 순수하고 보배로운 시절이었다.

 

우리는, 즉 금순 복성 나 이렇게 셋은 주성이를 좋아했던가. 한 번은 저녁 나절 마포 종점 부근에 위치한 그의 집에 몰려갔다. 주성이는 매우 부티나고 귀골스럽게 생겨 있어 우리 셋은 그에게 반해버렸다. 그날 수업이 끝나자 그의 집까지 따라가게 된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계셨다. 얼마나 품위있고 우아한지 우리는 금방 그 중년 아주머니에게 매료되었다. 조금도 되바라지거나 당돌하지 않은 우리 셋은 금세 말도 잘못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버렸다. 마치 처녀 손님들이 몰려올 줄 아시고 꽃단장을 하신 것일까. 지극히 여성스럽고 기품있는 모습에 그분이 내온 과일에 손도 대지 못했다. 주성이는 그의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

 

우리 셋중 복성이는 마치 맏언니처럼 의젓했다. 언제나 값비싼 일제 불라우스를 입고 다녔다. 금순이는 귀염이 덕지적지 붙어있는, 소공녀처럼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그 동네 마포 종점에 살았던 복성이는 주성이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것 같았다. 아! 복성이는 이름글자 그대로 복도 많아라! 나는 복성이가 그럴 수 없이 부러웠다. 매일이다시피 학교에서 또 주일날은 교회에서 미남자를 만나는 복이 어디 흔한 복인가? 나는 복성이에 비하면 마포 종점의 가장 끝인 청량리 종점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나는 역시 우리과 키꺽다리 안재가 안내한 경희대 근처의 휘경동 장로교회를 다녔다.

 

당시는 홍능산을 넘어가야 휘경동 교회로 갈 수 있었다. 홍능산을 넘자면 작은 개울을 끼고 양 사방에 숲이 우거진 임업시험장 산길을 걸어서 가야 했다. 경치가 좋았다. 각종 나무향기에, 새소리도 들려오는 시적인 풍치를 아우른 산책코스였다. 나는 산책코스였지만 주성이에게는 먼길, 마포 종점에서 청량리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일요 아침에 식사도 거른 채 예배시간을 맞춰 내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운데 사는 나보다도, 교회 앞이 자택인 안재보다도 더 빨리, 주성이는 우리가 다니는 휘경동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 아침, 안재와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한 주일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몇 주나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 출석, 어찌 보면 '시지포스 신화'를 나에게 선물한 안재가 싫어할 수도 있는, 그래서 나는 안재에게 우리가 공덕동 교회로 한번 가보자고 말할까 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 그의 형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던가. 주성이는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그의 집에 찾아 가기도 멋적고 기실 찾아갈 구실도 적당한 게 없어 망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셋이서 의기투합, 주성이네 집을 가게 되었다. 우연이 아니고 내가 금순과 복성에게 권한 것이 되었다. 그 후에는 나혼자서 주성이가 다니는 마포 종점, 공덕동 교회로 한두 번 원정을 갔다.

 

그게 연애감정인지, 또래들끼리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단계인지 모르지만 그 해 한 학기가 어떻게 흘러간 줄도 모르게 빨리 지나갔다. 주성이를 좋아하는 여학생은 우리 셋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다. 다른 남학생들은 그냥 군복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걸치고 학교에 오는 반면, 주성이는 언제나 단정한 신사복 차림이었기 때문인가. 그의 어머니는 홀어머니였지만 부자였으며, 그는 부잣집 삼형제의 막내아들이었다. 옷이라면 당연히 양복이 그에게는 적당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폭우가 뜸하기를 기다리며 이마트 매장 처마밑에 서있다. 멋진 건물, 마포문화원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동안 추억에 젖는다. 그리웠다. 할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마음만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풋풋한 시절 만났던 얼굴들이 지금은 세월에 닳아있을까.  당시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시문학의 밤' 이 열리면 꼭 국문과가 아니더라도 낭만의 밤을 꿈꾸며 선남선녀들이 동서사방에서 구름같이 모여들지 않았던가.

 

빗줄기가 좀 순해지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친구가 소개해준 특별한 닥터를 만나러 가는 중요한 날이다. 나는 낫지 않은 것이다. 통증때문에 밤마다 잠드는 게 고역이었다. 주먹으로 두들겨보고, 파스를 붙여보고, 다리 어깨 가슴 배 허리 다리 운동 등, 맨손체조로 몸을 풀어보는데, 팔다리 저림은 여전하다. 쑤시는 증세보다 저리고 애린 증세는 더 못 견딜 노릇이었다. 몇 달에 걸쳐서 시행한 치료는 지금 어떤 형태로 있는가.

 

꼬박 3시간을 기다려 새로 만난 닥터는 여러 개의 주사기에, 또한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용기에서 주사액을 채워 나의 아픈 부위에 주사를 놓았다. 30분에 걸쳐 주사놓기가 끝났다. 약은 없다고 했다. 나는 약을 처방해주어도 받아오기는 해도 잘 먹지 않는다. 약은 번번이 기를 뺏고 사람을 나락으로 쳐지게 한다.

주사 맞은 후 몹시 어지러웠다. 다른 방 침상에 누었다. 비를 흠씬 맞았기 때문에 체면없이 잠들 수도 있어 나는 일어났다. 결재액이 예상을 웃돌았다. 비급여 항목인가. 나는 빗길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마포문화원 쪽, 복성이네 집이 있던 얕으막한 언덕길을 그리며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복성이네와는 반대편에 살았던 주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아하고 아름답고 이지적으로 보이던 당시의 그의 어머니로 봐서는 막내아들을 연애결혼 시킬 것 같지는 않았다. 내 판단이었다. 나도 교회를 청량리에서 마포로, 주성이도 마포에서 청량리로 계속해서 오갈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 멀었고, 이쪽 저쪽에 서로를 훼방놓는 세력도 간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겠다. 여튼 그옛날의 마포 종점! 나에게는 무한 그리운 장소였다.   

 

밤깊은 마포종점 갈 곳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없는 나도 섰다

강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 가는 마포 종점
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하면 무엇하나
궂은비 나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종점이 매양 그러하듯 밤이면 다른 곳보다 더 으슥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던 곳이었다. 시내버스도, 전차도 종점이던 마포종점. 나는 문득 내 풋살구 연정을 노래한 듯한 은방울 자매의 '마포 종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