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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고

능엄주 2021. 7. 15. 15:37

밤을 지새우고

 

곰곰이 생각했다. 계속 슬퍼만 하고 아프다고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말고가 없다.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한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죽은 자를 위한 지장경 기도 열흘 째. 나는 한 밤중 기도를 마친 후 노트 북을 열었다. 아침에 출판사에 메일을 보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답장이 와 있었다.  

 

작년에 보낸 원고 다시 보내달라는. 처음에는 이 제의가 귀찮게 여겨졌다. 한 번 보냈으면 잘 간수할 것이지 왜 다시 보내라는 거야? 출판사만 바쁘냐? 나는 더 바빠! 그러나 내 생각은 즉시 변했다. 그렇다. 작년 생각  다르고 올 해 생각은 또 다를 수 있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토씨 하나, 낱말 하나라도 새로운 게 발견되면 바꾸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시간은 밤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지장기도를 마치면 곧바로 내일이 되었다. 지장기도야말로  귀신 시간이라는  한 밤중이 제격이다. 나는 밤이 이슥했지만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프고 슬픈 것 벗어날 수 있는, 잊을 수 있는 묘책이 생긴 것 아닌가. 그래, 원고를 다시 보자. 이 책이 더 진보하고 귀한 책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스탠드를 끌어와 노트 북을 향하게 하고, 좌정했다. 

 

1 시간, 두 시간, 시간 가는것은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고 단편소설 1편마다 대략 한 시간 남짓 소요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이고 전에도 여러 번 교정을 본 글이었지만 교정 보면서도 바로 하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허다했다. 고칠 수록 소설은 빛이 났다. 출판사에서 나에게 좋은 기회를 준 것이었다. 

 

두 편의 단편소설을 더 보았다. 2시간이 또 후딱 지나갔다. 도합 5시간을 앉아 있노라니 출출한 것도 있지만 지나친 좌정 상태는 건겅상 해롭다.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한 번 빠지면 날이 가는지 밤이 가는지 모르는 내 미련한 기질이 문제되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거실을 오락가락, 창밖도 내다보고 나홀로 깨어 있음을 즐겼다.

 

5시간, 5편으로, 완전무결하게 끝을 낸 것이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나는 몹시 피로했고, 다시 잠을 청했다. 5시간의 몰입, 집중이 작금의 내 건강상태로 보건대 가상했다. 하면 할 수 있지만 밤을 지새운 건 일상의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어떤 기척에 잠을 깼다. 머리속이 멍했다. 비틀비틀 어지러웠다. 누었다 일어났다를 거듭하다가 아침 기도를 했다. 아침 기도는 마음의 중심을 유지시키는 방편이다. 

 

낮 2시까지 나는 남은 4편을 마저 끝마칠 수 있었다. 대단한 성과였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이제 확실하게 방향타를 제대로 잡은 것인가. 원고를 발송하기 전에 읽고 또 읽었다. 교정지를 받으면 그때 또 볼 것이었다. 쉬자. 오늘은 허무한 하루가 아니다. 슬프고 아픈 날도 아니다. 밤을 지새우고도 나답게 시간을 잘 활용한 것에 흐뭇함을 느껴야 옳다. 하지만 집중, 몰입도 좋지만 자주 밤을 지새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