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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슬픔

능엄주 2021. 7. 13. 19:56

끝없는 슬픔

 

갈 사람, 이 세상을 하직하고 하늘나라로 갈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일까.  저 멀고 먼 하늘 나라에서 사자使者를 지상으로 파견해 '너는 몇 월 몇 일 이승을 떠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 고 미리 힌트를 주는가. 옆엣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가족 누구에게도 눈치채지 않게, 그림자도 없이 왔다가 저승에서 온 사자는 자취도 남기지 않고 가버리는가.

 

그날 아침 동생은 딸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고 한다. 병명이 당뇨여서인지 입맛은 잃지 않았다. 갈비탕이 먹고 싶다.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고 의사표시도 자유롭게 했다고 한다. 나는 동생이 검은 콩을 넣고 손자국이 나게 주물러 찐  쑥덕이 먹고 싶다고 해서 동네 떡집을 돌며 그 떡을 찾아헤매기도 했다. 검은 콩을 넣은 떡은  여름철에 잘 상해서인가. 몇 몇 떡집을 둘렀으나 살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그냥 쑥으로만 빚은 쑥개떡과 바람떡이라고 부르는 떡을 사가지고 간 일도 있다. 한번은 도토리묵을 쑤어서 가지고 갔더니 자연 그대로의 옛날 묵 맛이라고 하면서 잘 먹었다는 게 아니더냐. 수박, 토마토, 군밤, 딸기도 전처럼 많이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잘 먹는 편이었다.

 

적어도 입맛이 살아 있고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비록 환자이긴 해도 생명의 연장이 얼마든지 가능할 줄 알았다.  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살아갈 수만 있는 게 아니라 회복의 기미도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나는 또 지인에게 템프 업 이라는, 그러니까  템프 업은 몸에 유해한 균은 30분 내에 99,999% 박멸하고 유익한 균은 더욱 잘 번식하게 도와준다는 스마트 항균 기능을 하는 섬유라고 한다. 그 섬유는 섬유 자체의 분자구조를 바꾸어 섬유 분자 하나 하나가 원적외선을 복사해, 온몸의 부실하고 아픈 부분을 개선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는 선교의 불모지로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선교사처럼 기쁜 마음으로. 내 정형외과 치료가 끝나자마자 동생집으로 달려가지 않았던가.  한마디 유언도 없이 그렇게 가다니. 동생은 손이 수시로 저려 손치료하는 기계가 고장나서 동생 딸이 그거 고치러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홀연히 생명줄을 놓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템프 업은 팔 다리 저리고 손가락 마디 마디 쑤시는 지긋지긋한 통증도 혈액순환이 개선되면서 통증물질이 분해되고 배출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동생이 주로 다니는 고려대학 안암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임상실험을 한 결과, 요통환자들이 템프 업 복대를 4주간 착용한 후에 통증이 2단계, 최대 5단계까지 감소했다고 하지 않던가. 당뇨환자들 역시 템프 업 의류를 12주간 꾸준히 착용하여 통증 지수가 2단계 감소하고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했다.

 

나는 희망을 품었다. 그 희망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지하철이, 버스가, 한없이 더디 가는 것 같아 마음 졸이며 달려간 것이 동생 사망 2일 전이었다. 원통하고 분하다. 살려고 하면 다 방법이 있다. 집에 환자 보호자가 없는 것 알고 저승사자가 그 틈을 타고 쳐들어 온 것일까. 미리 와서 베란다 화분 틈새에서 대기하며 호시탐탐 환자 덮칠 틈을 노린 것일까.

 

"이미 벌어진 일. 더 생각하지 말아요. 

"이 세상에 남은 건 언니하고 나 둘 뿐이라고요.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건강만 잘 챙기세요."

 '저와 나 둘뿐'이라는 셋째 동생의 말은 물론, 자는지 먹는지,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아무 분별이 없다. 얼마전 콜레스테롤 검사하면서 치매 검사도 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결과지를 보고 만점이라고 했던가. 그까짓 거 유치원셍도 맞추겠다. 나는 그런 정도의 검사를 시킨 D.R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치매검사 만점과 관계없이 나는 불안하고 우울하다. 왜 살고 있는지,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그냥 뒤숭숭하다.

 

이럴 때는 여행이 제격이다. 창밖으로 전혀 생소한, 평소와는 다른 풍물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졸음이 밀려오면 나에게는 그보다 더 안전한 처방은 없다. 떠나고 싶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왜 이리 극성이냐? 사람이 여기저기서 막 죽고 있지 않은가. 툭하면 터지는 확진 소식, 감염률이 훨씬 높다는 변종 바이러스 감염을 알리는 문자,  몸서리난다. 끔찍하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에 무참한 죽음이 한둘일까. 여행은 못 가더라도 졸지에 동생을 잃은 끝없는 슬픔을 이 악물고 참으려고 노력한다. 도처에서 코로나19로, 혹은 불의의 사고로 혈육을 잃고 애통해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슬픔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