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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悲報 날아오다

능엄주 2021. 7. 5. 23:51

비보悲報 날아오다

 

별다른 꿈도 없었다. 새벽에 잠이 깨일 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하늘은 짙게 흐리고 후덥지근했다. '무척 더운 날씨가 되겠구나' 하며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그런데 자꾸 무엇인가가 뒷꼭지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오자 생각했으나 몸이 영 아니올시다로 기울어져 있었다. 작은 동작에도 실수가 연발, 자칫하면 집안에서도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이런 경우는 자주 경험해서 알고 있다. 매우 주의를 하지 않으면 그릇을 깬다거나, 글을 쓰면서 전혀 아닌 내용으로 흘러간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날이라는 것을.

 

나는 어제밤에 포장해놓은 두 권의 책을 발송하러 우체국을 다녀와야 했다. 우체국을 가려면 쥐똥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을 지나가야한다. 올해는 유난히 쥐똥나무꽃이 풍성하게 피어났다. 그 향기가 인근 상가로, 아파트 단지로 마구 흘러넘쳤다. 아까시꽃보다도 장미 향기보다도 더 짙은, 매혹적인 향기였다.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그 향기를 음미하고 즐기면서 천천히 쥐똥나무 군락을 지나가야 할 정도로 그 향기는 독특했다.

 

나는 쥐똥나무가 이미 꽃철을 넘겨 그야말로 쥐똥같은 파란 열매를 오종종 매달고 있는 것을 바라보자 집밖으로 나온 게 흐뭇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절차로서 그 임무를 마친 것이므로 대견했다. 또한 존경하는 두 분 문인에게 내가 지은 책을 보낼 수 있어 그 역시 즐거운 일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엔 반찬가게 앞에서 유기농으로 길렀다는 근대와 애호박을 샀다. 그것들도 나에게 사소하지만 요상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근대와 애호박을 기른 주인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게 했다. 더 무엇을 살까 하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나는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시간에 병원을 다녀올 셈이었기 때문이다. 불현듯 병원에 가기 싫은 마음이 솟았다. 가면 뭘해. 맨날 그 턱인데. D.R가 먹으라는 약, 맞으라는 주사를 사양해서 더 가기 싫었다. 수차례 먹어보았지만 전혀 호전의 기미가 안 보였다. 약을 먹으면 먹을 수록 바보가 되었다.

 

약 먹으면 당장은 증상이 완화된다. 주사 맞으면 편안해지는 것도 느낀다. 그러나 그 때 뿐이다. 여전히 어깨 통증, 목과 허리, 명치 부분 증세가 남아 있으면서 환자의 세월은 부지하세월이다. 환자 정말 지겹다. 꿇어 엎드린 자세가 어언 석달 아닌가.  오늘까지 100여일을 나는 고독한 환자였다.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그만 누워버렸다. 지난 밤에 세번 정도 잠이 깼다. 깨어보면 아직 오늘 밤이었고, 다시 깨어보면 내일 새벽이 멀었다, 그러다가 불을 밝히고 일어났다. 그게 밤 2시였다. 그래서일까. 깜박 잠이 든 것 같고 카톡 오는 소리에 선잠을 깼다.

"이모! 엄마 돌아가셨어요."

 앗! 비보가 날아온 것이다. 지난 밤 잠이 오지 않은 것, 자주 잠에서 깨어 방황한 것 다 이유가 있었다. 동생의 사망을 알리는 조카의 기막힌 소식이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은 오래전부터 당뇨를 앓았다. 당뇨는 흔한 병으로 잘만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 내 주변 지인들도 당뇨를 앓으며 무탈하게 잘 지내는데 이게 뭔 일인가.

엊그제도 나는 정형외과 진료를 마치고 나서 동생을 문병하러 갔다. 동생은 안락의자에 나는 그의 맞은 편에 앉아서 수박을 먹지 않았는가. 많이 여위었지만 사고가 명료하고 말도 잘하는 편이었다. 갑작스럽게 타계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전신에 맥이 탁 풀어졌다. 무슨 일이든 그르칠 정도로 엉망진창으로 헝크러진 것이다. 눈물을 질금거리며 방에서 베란다로. 건너방으로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팍! 주저 앉았다. 믿지 않으려 해도 뇌리에 동생의 죽음이 각인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였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 진실을 확인하듯 다른 동생이 전화했다.

 

나는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이럴 수는 없어! 왜 내 동생을 잡아 가? 걔는 예능에 뛰어나고 공부도 많이 했어. 공부하느라고 고생은 얼마나 한 줄 알아? 부잣집에 시집가서 호된 시집살이는 또 얼마나 눈물나게 겪었던가. 나는 콱 ! 벽을 치고 또 쳤다. 전신이 총을 맞은 듯이 얼얼했다. 마음결이 갈갈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 위로 언니와 오라버니 두 명,  동생들은 지난 몇 년 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둘러 이승을 떠났다.  6.25 한국전쟁 전후 부모와 떨어져서 하 고생을 해서일까. 우리 형제들보다 더 고생한 사람들도 잘 살고 있는데 이건 너무하는 것이다.

 

생명은 누가 주관하는가. 동생의 마지막 편지에 '하느님은 없다'라고 썼다. 그동안 오죽 고통이 자심했으면 캐톨릭 신자면서 그런 말을 편지에 썼을까 싶다. 타고난 좋은 솜씨, 공부한 것, 맘껏 발휘도 못하고 너무나 아쉽게 떠난 것이다. 오늘은 불행한 날, 비보가 날아온 날. 한 밤이 되어도 잠들 수 없다.

 

나는 지장보살본원경을 책상위에 꺼내놓고 자정을 기다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오늘 부터 49일동안 나는 자정子正에 지장경 기도를 하리라. 육도六道의 일체중생을 교화하시겠다고 발원하신 지장보살님께 간절히 기도하리라. 영혼육이 총체적으로 아파 타계한 동생을 위한 것이고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한 기도가 될 것이다.

 

변 아텔라! 하늘나라에서는 앓지 말고 건강하기를! 어쩌자고 그렇게 훌쩍 떠나가니? 참으로 야속하구나. 억울하구나. 하늘나라 가서 아버지 어머니 뵈면 안부 전해주렴! 언니랑 오라버니들, 그리고 동생들 만나면 소식 전해주라! 늘 그립다고. 보고 싶어한다고. 사는 동안 더 살뜰히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고. 변 아델라! 기도 시간이 다가온다. 안녕! 하늘나라 조심조심 잘 찾아가거라. 변 아델라! 부디 명복을 빈다.

 

- 이 모든 중생들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형상을 보거나, 내지 이 경의 글자를 석자나 다섯자나 혹은 한 게송이나,  한 글귀를 들은 자는 현세에 뛰어나게 묘한 안락을 얻을 것이며, 미래세 백천생 동안에 항상 단정하여 존귀한 집에 태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