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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에 대하여

능엄주 2021. 6. 15. 14:11

소재에 대하여

 

소재素材가 없어 소설을 못 쓴다는 사람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최근 나에게 발생했다.

스물한살 어리고 어여쁘던 시절, 나는 S 대 남학생의 권유에 힘입어 숙식을 제공하고 매월 소정의 급료를 지급한다는 H 대학 교수님을 방문하게 된다. 나를 안내한 그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의 과 대표였다. 나는 충청도 촌뜨기로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순딩이 반열에 속했다할까.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던가. 교수님은 나에게 몇 가지 사항을 질문하고 나서 바로 입주하라고 흔쾌히 허락했다.

 

내 눈을 가장 황홀하게 한 것은 교수님 이층 자택 구석구석에 높게 쌓인 책이었다.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가는 지하 창고에도 겹겹으로 쌓여 있는 서가書架의 책이 다 내것이 된 것처럼 너무나 반가웠다. 당시는 학교 이동, 轉科가 자유로웠다. 나는 곧바로 학교를 옮겼다. 나를 조기 결혼시키려고 목숨을 건 가족들과 통쾌하게 결별할 수가 있어 쾌재를 부르며 짐을 쌌다. 스물한살 여자애한테 무슨 뚱단지 같은 시집 소리를 노상 읊어대는지 귀가 따거워서, 그 속셈이 비열해 보여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 가족들을 지극히 혐오했던 시기였으니까.

 

학교 버스로 교수님의 무거운 가방을, 내가 대신 들고 가는 등하교 길은 멋지고 멋졌다. 버스 안에는 각과 교수님들을 비롯, 교직원들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교수와 교직원 전용이었다.  마치 장차 내가 교수가 될 것 같은 가슴설레는 발상도 슬며시 고개를 쳐들곤했다. 하긴 교수님을 처음 뵙던 날  '내 후계자가 되면 좋을 것 같다. 학생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교수님의 내 관상 평이었다.

오로지 학업과 문학 - 책 읽기가 내 일과였고, 수시로 교수님 원고 작업을 돕는 것, 원고 마감일에는 신문사로 달려가 원고 전달하고 원고료 받아오는 일, 중간고사, 기말 고사 시험지 채점하고, 출석카드 정리 등등, 힘들기는커녕 재미가 쏠쏠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시험답안지에 정답 대신 자작시를 써 놓은 학생은 어떻게 생겼을까.  대학 봄 축제 때 그 학생을 한 번 만나게 되는 행운이 오는 것인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그 학생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품어볼 수 있었다.

 

교수님 부군도 이름난 작가였고, 그들 부부는 각자 실력대로 전국의 유수한 신문에 연재소설을 기고하는, 말하자면 두 분의 전성시대였다고 할까. 그 댁에는 대학생인 수양딸에다 부엌일을 똑떨어지게 잘 처리하는 소녀와 함께, 작가이며 교수인 두 분의 복장服裝을 맡은 사람. 이조실록 같은 도서 열람이나 고전 도서 구입 등으로 나 말고도 몇 몇의 식구가 더 있었다.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틈틈이 소설원고를 써서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밤 중 엎드려 글을 쓰고 있을 때 난데 없이 교수님의 부군이 애호하는 고양이 일가가 떼를 지어 나타나, 펜을 물고 달아나거나 책과 원고지를 흩으러 놓는 일 외에는, 비교적 자유롭고 문화예술적인 환경에 나는 흡족해 했다. 집에는 내 거처를 알리지 않았으므로 선을 보라고 만나자거나, 전화로 나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으니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꿈같은 시절에 속할 듯하다.

 

"교수님!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요. 제가 밤 새워 썼어요. 이거 한 번 읽고 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쓴 원고를 교수님에게 보여드렸다. 정말이지 그때는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 언제 글을 쓸 시간이 있었어? 장하구나!"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B양! 내가 조금 고쳤어, 마감 일자는 다가오고 소재가 없어 고민했는데 마침 잘 됐어, 이 작품 내가 D사에서 간행하는  문예지에 내고 싶은데 B양 생각은 어때?"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긴장된 자세로 교수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며칠 후 나는 작가의 이름자가 바뀐 원고를 들고 D 신문사 5층 계단을 올라갔다. 원고료는 한학기 등록금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교수님은 도장과 원고료를 나로부터 받자마자 나의 손에 얼마의 돈을 쥐어주었다. 이른바 소재비素材費 명목이었다. 교수생활 수십년에 소재가 없어 글을 못 쓰다니. 나는 믿기지 않았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 오늘의 주제는 '소재에 대해서' 다. 나는 ㅡ 교통환자가 된 덕을 단단이 보게 된 것을 역逆으로 기뻐해야 하나? 그동안 나는 병을 치료한 게 아니라 중병을 앓고 있었다고 할까.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어려울 만큼 사지백체가 죽기살기로 아팠다. 우울증이 극에 달해 이러다 내처 죽는 건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도 끼어들었다. 혹 선의로 해석하자면 소설 소재를 얻고 모으고,  소설 구성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았다고 내가 나를 위로해야 할 것이었다. 아직도 고생은 완전 종료된 것이 아니지만, 더 깊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기 보다는 이 선에서 작심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저녁 놀이 막 비껴간 하늘이 눈물이 나도록 서러운 빛깔인지, 드높고 장엄한지, 새롭게 감격하는 때가 도래할 것 같다. 일단은 어둡고 누추한 환의患衣를 벗자! 나에게 할일이 있다는 것은 무조건 축복이다. 조상님, 부처님,  하느님의 은총아닌가. 알다가 모를 일은 그동안 치료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소재가 밀려온다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