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시끄러워
무려 석달째 마음이 시끄러워 아무 일도 못한다. 아무 일이란 글 쓰고 책 읽는 일이다. 무엇이 됐든 읽고 쓰고 있지 못하면 그건 내 인생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불의의 사고로 환자가 된 것은 이유 불문하고 불행한 사건이 되었다. 병원에 안가고 살아도 몇 년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미국 독감을 서너달 앓으며 기침을 그렇게 모지락스럽게 험악하게 하면서도 나는 내가 낳은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며느리 죽음 이후 병원을 기피해왔다. 길가다가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소름이 돋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대구에서 암센터까지 오갔을 며느리, 결국은 병원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그녀를 생각하면 내 여생에 병원은 절대 갈 수 없다고 결심을 굳게 한 터였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때문에 여기저기 병원을 다니며 개고생을 자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원수나라에 나포拿捕된 듯, 꼼짝달싹을 못하는 꼴새 아닌가. 오라면 가고 약주면 먹고, 약먹어 혼곤하면 잠에 빠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절절맨다. 하루 아침에 중환자가 되어버린 느낌이 거짓말이 아니다. 약이 그 이유인가. 교통사고 증상이 그러한가. 평소에 멀쩡하던 심신이 지금 막대한 장애를 받고 있다.
독한 약이 내 기력을 능가하는 것인가. 본래 교통사고라는 게 그 정도로 아픈 게 정상인가. 목을 움직일때마다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판별할 수가 없다. 다만 목이 몹시 아파있다는 것밖에는. 병원 다녀와서 잠에 빠져있다 깨어나면 어느덧 밤이 되곤 한다. 이게 석달째 아닌가. 기가 막혀서 팔팔 뛸 지경이다. 한 시간 60분을 열두갈래로 쪼개 써도 모자른, 금쪽 같은 내 시간을 이런 식으로 뭉개고 있으니 마음이 어찌 조용하기를 바라겠는가. 할일은 밀려 있는데 기氣가 너덜너덜, 산산이 흩어져 버렸으니 이 현상이 너무나 한심하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이랄까, 아들은 정곡을 콕 찔러 하는 말로 '반짝하는 4,5년 동안 어머니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라'고 격려인지 채근인지 주지시킨다. 나 자신도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한다. 이 지구에 오래 남아 별별꼴 더 보고 싶지도, 다른 어떤 미련도 없다. 그저 내가 계획한 몇 건의 일을 진행하고 마무리 짓는 것, 내가 수행해야 할, 지구별에서의 나의 마지막 과제라고 믿고 있다.
하루 걸러 비오던 날씨가 오늘은 복있는 신부가 시집가는 날처럼, 6월 중순치고는 덥지도 춥지도 않고 화창했다. 부지런히 병원갈 준비를 서두르다가, 아니 버스로 환승해야할 지점에 이르러 무시로 화산재를 피어올리는 남미의 화산처럼 반항심리가 들끓었다. 가지 말자! 환자는 싫다! 샛빨간 장미꽃이 어우러진 경찰서 담장을 등지고 홀로 피켓을 들고 종일 서 있는 청년처럼 나도 그렇게 내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다.
시끄러운 마음 그대로 6월의 둘째 토요일도 저물고 있다. 기대할 것은 밤에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다시 또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 내 인지능력은 겨우 그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바보 멍청이가 따로 없다. 삼재팔난 무서운 것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