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의 안락
복닥이는 심정 토로하는 곳이 블로그가 된 감이 없지 않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블로그 외에는 달리 마음을 나눌 데가 없어서인가. 은밀하고 오붓한 느낌이 드는 장소로 성급하게 결단 내린 때문인가. 외로움일까.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사람 많은데 사람 없다는 통탄으로 내 옹색한 의식이 맞물린 결과일까. 코로나19로 맞대면하여 토로할 수 있는 대화 상대가 턱없이 궁해진 이유일까.
어젯밤 나는 저녁밥을 먹고 곧바로 먹으라는 약을 먹었고, 정확하게 30분 쯤 지나자 잠이 퍼부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평소에는 밤 12시~ 1시에나 겨우 잠자리에 들었고, 더구나 낮에 잠자는 일은 거의 전무했다. 나에게 할당된 시간이 아까워서 도저히 잠이나 잘 수는 없었던 것이다.
복용하는 약이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잠의 동인이 된 건 최근이다. 미련할 만큼 오래, 죽은 것처럼 인사불성으로, 잠에 빠진 시간은 4시간 정도, 나는 그 4시간이 무슨 분기점처럼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통제, 소염제 같은 약의 유효시간이랄까. 더 자보려고 해도 어김없이 4시간이면 잠에서 깼다.
한 밤중이라 할 수 있는 25시 40분, 나는 오늘도 예외없이 말갛게 깬다. 충분한 수면시간은 8시간이라고 했던가.
8시간에서 한참 모자라는 4시간 정도를 잔 것이었다. 야속했다. 캄캄 밤중에 깨어나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꾸준히 줄기차게? 그렇다. 나는 교통사고에 의한 강제적 환자가 되어 충실히 치료에 임했고, 치료 받으면 적어도 몇 시간, 아니 그 하루는 다행히 몸 동작이 원활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로아미타불이라할지, 통증은 여전히 내 목을 비롯, 내 몸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목뿐 아니라 목 아래로 죽 내려가서 어깨, 등줄기, 허리까지 쪼은다. 아프다! 괴롭다! 아우성이다. 그렇게 새벽의 귀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간혹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목 보호대를 두르고 독서에 열을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는 어떤 동작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짜증나고 울적한 한 밤중 몇 시간이 이처럼 나를 괴롭히고 있다.
딸은 말한다. 내가 '병원을 좋아한다고, 약을 잘 먹는다고,'
도처에 장미꽃이 만발한, 푸르고 푸른 6월에 병원을 왜 좋아하는데? 무엇 때문에 약 먹기를 즐기는가 말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아파본 일이 없는 딸이 함부로 지껄여 오장을 긁는다. 오장을 긁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럴 때 하소연 할 곳이 필요해지는 거다. 하소연의 창구가 된 게 이즈음의 능엄주 블로그가 아닐까.
어제 낮 병원 다녀오는 길에서
"혼자 살아보니 제일 편하고 행복하다' 는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잘 나가는 아들 형제를 두었지만 굳이 '홀로살기' 로 가족과 자발적으로 유리된 그분은 바닷가를 산책, 자연을 맘껏 즐기며 시집 출간 준비를 한다고 했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도 책 낼 생각을 못하다가 혼자가 된 연후에야 마음을 내셨노라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그분은 만족스럽고 즐거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불로그에 심경 토로를 하듯, 그분 또한 시집 출간을 계기로 '홀로의 안락' 을 체험하고 계신 것인가.
모처럼 말마디라도 통하는 분의 전화였으므로. 한시간 이상 긴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블로그에 여과없이 서술되고 있는, 나 자신 자주국방이 미흡한, 각박하고 허술한 내면의 실상이 매우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혹, 사람! 사람 그리운 새벽이 역으로 나를 구원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백번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