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호소해요. 아파서 눈물이 난다고
근 한 달여 동안 나는 타인의 원고를 보게 되었다.
처음 그 원고에 대해서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저 요즘 너무 고달퍼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사정이었다.
가능한 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뭐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쉬어?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늙어본 일이 없는 史由가 내가 얼른 처리못하고 뭉개고 있을때
"왜 그러고 있어?"
인정머리 없는 말로 내 비위를 거스려도 나는 얼른 일을 잡지 못했다. 널린 게 일이었다. 일 같지도 않은 집안살림살이가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버겁기 짝이 없었다. 이번에는 눈을 콕콕 쪼으는 보강 보완, 윤문 교정이었다.
전에 캐나다에 가서 3주 머물때 나는 거의 매일 빵식을 했다. 한국에서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고 뱃속이 불편했다. 그 3주 내내 내 위장은 평화를 누렸다. 이건 기적이었다. 혹여 짐 힐스 목사님과 외숙 사모師母의 기도덕분일까. 단 한번도 체하거나 속이 거북하기는 고사하고 나날이 내 건강은 희망으로 치달렸다. 아무리 많이 걷고 많이 돌아다녀도 피곤을 몰랐다. 더구나 빵식은 설거지거리도 없다. 큰 접시 두어개와 찻잔을 씻는 정도니까 간편했다. 자주 시장을 보러가거나, 시장보아온 야채를 씻고 절이고 삶고 무치고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과정이 없으니 끼니때라고 해서 주부 혼자 동동거리지 않아도 좋았다. 빵을 구어 치즈, 쨈, 달걀후라이와 함께 먹는 방법은 매우 합리적이고 편리했고 영양면에서도 부족한 게 없었다.
직장도 오래 다니면 은퇴가 있고, 학업도 졸업의 절차가 있다. 집안살림살이도 좀 거리를 두거나, 아예 종료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집안을 가득 채운 온갖 잡동사니가 나에게는 애물단지였다. 버릴 수도 사용도 별로 하지 않는, 그러나 없애기도 난처한 그런 것들, 그 하나하나에 내 손길이 닿아야했다. 귀찮은 것보다는 육체적으로 고달픈 시기다.
글쓰기, 원고 보기, 고치고 보강하고, 윤색 뭐 교정, 이런 것들이 나는 너무나 어렵게 여겨졌던 것이다.
'생각 해보겠습니다."
내 답변이었다. 그 이유는 내 몸 상황이 안 좋다는 데 있었다. 강원도에서 귀가한 이후 나는 제대로 심신의 안녕을 누려본 일이 없다. 안녕? 아니었다. 편안치가 않았다. 쉬고 싶다. 오로지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원주에서의 A4 100매는 나에게 극기체험이었던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술술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 그냥 터져나온 문장으로 알는지 모른다. 하긴 누에도 그냥 술술은 아닐 것이었다. 그 자체로 대견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 진 것이다. 될수록 멀리, 공기좋은 곳에 가서 그냥 좀 푹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자의반타의반이었을까. 나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고, 한 달여 끙끙앓으며 주야로 작업에 몰두했다. 책 한 권 분량을 외우다시피 읽고 읽어 17번째 교정본 후 발송을 마쳤다. 후유~ 였다. 두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문맥이 끊어질까봐 중간에 쉬지도 않고 쉴새없이 두 눈을 혹사시킨 결과였다. 아침 8시에 책상에 앉으면 그대로 한밤중이 되곤 했다.
일을 마치자 비로소 겁이 났다. 안과를 갔지만 별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안경을 새로 맞추는 것 외에는.
나는 궁여지책으로 핏발이 벌겋게 선 두 눈에 얼음찜질을 했다. 몇 차례 계속하자 신기하게도 눈이 편안해졌다. 눈물이 그치면서 외출할 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자주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내나름의 방법인데 효과가 있었다.
유식심리학 시간에 S스님은 '내가 나를 사랑하라고 했던가.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했던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내가 나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체험했다. 나는 매일 밤 눈에 얼음찜질을 하지 않고서는 잠들지 못한다. 눈물이 줄줄 새다시피 흘러내려 자판 두들기기도 고역중에 고역이었다.
미련해! 미쳤어! 또 하나의 나가 불평하고 책망해도 무시했다. 나는 내 눈이 그만 빛을 잃고 나가버리는 줄 알았다. 아직까지 이토록 심각한 안통眼痛은 처음이었다.
코로나 19로 취소되었던 남해 유배문학, 김만중 문학관 행사가 재개되었다는 소식이다. 답사도 좋고 공부도 좋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에 가서 쉴 계획으로 있다. 다만 몇 날, 몇 시간이라도 현재를 떠나보자는 심산인 것이다.
내가 심신으로 가장 어려운 때 막무가내로 청탁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일을 완성한 나에게도 칭찬을 보내고 싶다. 하면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심신으로 많이 상傷해 있다는 점이다. 너무 열심히 했고, 조심스러웠다. 갈비찜이고 홍삼이고 공진단 다 소용없다. 그저 한가로이 푹 쉴 수 있기를! 오직 쉬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을 내 안의 부처님께, 내 안의 선지식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