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그 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할까. 굳이 인체의 대들보나 마찬가지인 척추뼈를 잇는 수술까지 감행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내 급한 성격, 고통을 더 참지 못하고 수술에 응한 실수라할까. 나는 그 대수술이라할 만한 척추수술이후 크고작은 사고로 노상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신체의 불균형 부조화, 독한 항생제 장기복용이 화근이었다. 수술은 고통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고통의 시작이 되었다.
전해오는 말, 그게 다 신빙성이 있는 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나놓고 보니 일리가 있는, 이미 겪은 바 있는 환자들의 말, 귀기울여 경청해야 하는 증언이었고, 나름 경험자들의 진실성있는 충고였다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병증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주변에 나처럼 허리가 아파 발등까지 전기가 통하듯 찌르르해서 버스를 타도 앉기보다 서서 가야 했고, 팍팍 쑤시는 통증보다 저리는 증상은 나를 급기야 이 병원 저병원 순례하게 만들고 수술에까지 이르게 했다.
송도 산꼭대기에 살적에 첫 아이 낳을 무렵, 혹심한 가믐도 문제였다. 저 아래 산밑에 있는 우물까지 양손에 양동이를 떨쳐들고 내려가서 수십미터가 넘는 깊은 우물물, 처음 해보는 무겁고 투박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산꼭대기 집까지 우툴두툴한 산길로 운반해 와서 아기 목욕시키고, 밥하고 기저귀빨고 세탁하고 청소했다. 힘겹게 길어온 물로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했던, 그래서일까. 본시 내 허리가 약해서 였을까. 아무튼 나는 10여년 넘게 양손에 물 바케스를 들고 다니면서 세 아이들을 길러내야 했다. 그 혹심한 고생이 결과적으로 내 약한 허리를 공랙했을 거라는 가정도 제외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술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설사 더 참고 그냥 살았어도, 수술 후유증에 비하면 덜 괴로운 상황이었다고 여긴다. 후유증뿐일까. 척추 수술 이후 나는 툭하면 길 가다가 고꾸라지거나, 지하철 구내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자주 굴러떨어지곤 했다. 배는 왜 그렇게 아픈지. 수술 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검사받고 치료받은 횟수만 해도 업청나다. 돈은 또 얼마나 퍼부었을까. 여기저기 다 가봐도 어느 병원 어느 의사도 나의 배아픈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단 한 분 외에는. 척추 수술 후유증이 더 무섭다며 수술을 적극 만류한 의사도 그 많은 정형외과 닥터 중 단 한분이었고, 수술후 나의 고질이 된 배앓이를 고친 닥터도 단 한 분이었다.
십수년을 병원을 전전하며 숱한 시간과 금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한 번 넘어지면 그저 몇 날 지나 회복되는 가벼운 부상이 아니었다. 삼동에 꽁 꽁 언 무통 쓰러지듯, 팔이 부러지고, 발이 부러지고, 고관절이 절단나서, 많게는 100일을 입원해야 했고, 그렇다고 깨끗히 완치된 것도 아니고 다시 새로운 후유증을 유발했다.
왜 그처럼 툭! 하면 잘 넘어지는지. 수술하고 육체가 편안해지기는커녕 더 괴로웠다. 수술 하기 전의 아픔보다 수술 후의 아픔은 너무나 요상해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선배의 권유로 한방에 갔다. 위험하고 독한 항생제로 몸이 피폐해졌는가 싶어서 좋은 한약재의 도움을 받고 보신을 하기 위해서였다. 몸의 기운을 돋우어야 후유증이 덜 할까 싶어서 간 그 한방에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내 신체가 비틀어졌다는 것이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 그 크기와 상태가 다르다는 진단이었다. 수술 후 36만원에서 시작해 값싼 신발까지 무수히 신발을 갈이신었지만, 나는 툭! 하면 넘어지는 증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른 쪽 발등이 모양새가 이상했다. 어떤 고급 운동화를 신어도, 수술환자에게 최고로 편하다는 30만원을 호가하는 미제 사스, 그 것도 내 발에는 맞지 않았다.
나는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수술한 병원에서는 1년에 한번씩 래원하여 MRI 찍고 진단받으라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디를 또 잘라내자고 할까봐 겁도 났다. 이미 그 병원과는 마음으로 인연을 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를 들면, 지폐가 반 조각 난것을 풀이든 뭐로든 붙여놓으려 해도 두눈으로 똑바로 보면서도, 그걸 반듯하게 붙여놓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가 단언하건대 나의 척추뼈 상하를 잇는 수술은 절대로 완전한 수술, 성공한 수술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정확할 것 같다. 지폐 한 장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인체의 대들보인 척추뼈 상하를 전기 톱으로 갈아내고 잇는 수술이 지난하다는 것, 의료 기기, 의료 기술이 제아무리 발달했다고 한들, 만에 하나 실수 착오가 발생하리라는 가정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틀려 있는 몸, 왼쪽 오른 쪽 다리의 길이와 굵기가 차이가 나는, 어떤 신발도 맞는 게 없다는 사실, 그렇다고 병원을 찾아가서 다른 부위를 잘라내는 수술을 다시 받을 미련, 무지를 재현하고 싶지는 않다., 그 이후 나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자연치유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픔을 달래고 있다. 비틀린 몸을 바로잡는다고 무지막지한 칼과 창 앞에 부실한 신체를 노출, 더는 혹사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밤을 새워 나는 [자연 치유] 앤드류 와일 박사의 책을 탐독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처방을 일러주는 좋은 저서, 환자의 입장을 최대로 배려하면서 쓴, 예방 중심의 이 책이 너무나 소중해서 나는 아끼듯, 뇌리에 새기듯, 조심조심 정독하는 중이다. 치유는 의사의 환자에 대한, 이 책처럼 섬세하고 진실하고 구절 구절, 한 단어 한 단어에 정성이 깃들듯, 치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국 의사 로빈 쿡의 의학시리즈에서도 나는 많은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전폭적인 신뢰와 관심을 갖게하는, 치료의 주체는 결국 우리 몸, 나 자신이 의사라는, 자연 치유에서 이미 도의 경지에 이른듯한 위대한 필설에 깊이 공감한다. 나의 수술 결과에 따른 고통을 다소나마 희석시키고 있다.
척추수술 이후 나는 툭 하면 넘어져 발을 다치고 팔을 부러뜨리고 고관절을 상하게 할 정도로 나는 오른 쪽 왼쪽 몸의 균형을 상실한, 장애인 복지카드 덕분에 기차삯도 할인 받는, 말 그대로 장애인이 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남은 여생 더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살아갈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