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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푹 찌고 삶는 날

능엄주 2020. 8. 5. 10:58

푹푹 찌고 삶는 날

 

간헐적 난방을 실시한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방송을 듣고 온집안에 난빙을 작동시켰다. 끈적대고 습한  실내공기가 뽀송뽀송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잠자다가 흠씬 땀이 흘러 깨어보니 방바닥이 따뜻했다. 따듯해졌다고해서 금세 집안에 쟁여 있던 습기가 날아간 것은 아닌 듯, 여전히 질척거리고 끈끈한 것이, 내가 흘린 땀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올 해 장마가 좀 길어져서 그럴까. 별로 상쾌한 기분이 아닌 채로 나는 오늘도 병원을 향해 우산쓰고 안경쓰고 마스크 쓰고, 여러 가지를 챙긴 다음 집을 나서야 한다.

 

가기 싫은 병원! 어릴 때는 아버지 등에 업히는 재미로 갔던가.  나 어릴 때 폐결핵이 창궐하여 먼데서 가까운 데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선생님.  우리 옆집 총각에 이어 바로 내가 걸린 것이었다. 형제 많은 집에서 무럭무럭 잘 자란 것 같았는데, 난데 없이 그 몹쓸 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노상 말라리아, 고뿔, 배앓이로 골골해서 내 부모님은 나를 멀리 부산 바닷가에 수양딸로 보내버릴 궁리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한약을 마시고 빈방에 홀로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 나를 데리러 온 부산 사는 K 사장님이 그 부인과 함께 근심스럽게 나를 내려다 보던 일,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매번 아버지 등에 업혀 청주중앙공원 남긍외과에 다니던 일. 큰이모가 우리집에 오셔서  야차하면 체해서 싸고 토하던 나에게 미역죽을 쑤어주던 일. 형제 중에서 내 건강이 제일 시원찮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출타한 가운데 나를 잉태하고, 나를 출산한 어머니. 그런 나에게 외할머니는 에미애비 갈라놓은 딸이라고 매정한 말씀을 하셨다.  일생중 가장 예민한 사춘기시절에도 나는 그말을 듣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한 생명의 건강이 제대로 지켜질 수는 없을 터. 그래서인가. 태어날때부터 신약체질이어서인가. 유치원에 다닐 때도 가는 도중 혼자서 병원에 들려 주사맞고 치료를 받고 유치원에 갔다.

 

병원 가기 싫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가기 싫어서 미루다가 큰 병으로 진전돨까 무섭다. 글쓰면서 아픈 것 서러운 것, 다 잊으려고 했던가. 책상에 엎드려 자판 누르다보면 끼니도 놓치고, 하루  가고 열흘가고, 한 달 일년이 후딱 지나갔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공부해라' 하면 게임에 몰두하느라 교과서 한 번 펼쳐볼 사이 없이, 다음 날 어제 매고갔던 그 가방 그대로 짊어지고 학교가는 철없는 아이와 뭣이 다른가.

 

정말 가기 싫다. 그러나 가야한다. 괴로우니까. 이 수술 저 수술로 항생제 몸서리나게 먹어 약도 잘 듣지 않는다. 온몸에 칼자국 상흔 투성이다. 어쩌나! 비오는데 또 병원이라고? 이럴려고 내가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났나? 이게 사는 것인가? 남보기에는 멀쩡한데 왜 매일 아퍼? '엄마 병원 그만 가! 병원 간다고 해결되는 것 아무 것도 없어. 임시방편일 뿐이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누군 병원 좋아서 가는 줄 아니? 후유~

 

찌고 끈적대고 습한 날. 이 나라 저나라에서 홍수 피해 소식이 폭탄처럼 날아드는 차제에, 이 한 몸 다스리지 못해 또 병원행? 억척스럽고 강건하지 않을 거면 세상에 나오지나 말것이지! 그렇다고 무슨 성인병이, 악성 고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잦은 병원 나들이에 내 영혼이 멍든다. 내 삶이 피폐해진다. 내 황금 같은 시간이 날아간다.

병원 가기 싫은 만큼 더 열심히 살자. 나를 왕창 소진시키자. 희대의 걸작을 생산할 꿈을 꾸자 그리고 이루자.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